현지화 노력·박항서 매직 ‘합작’… 베트남서 날개 단 신한금융

입력 2019-02-25 04:03

“시장에서 ‘캐시카우’(확실한 수익 창출원)라고 하는 캐피털회사 수준인데….” 신한금융그룹은 최근 실적을 결산하던 중 신한베트남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보고 고무됐다고 한다. 연간 글로벌 수익 3215억원 가운데 베트남에서 발생한 수익만 966억원에 이르렀다. 신한금융이 진출한 20개국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매물로 나왔을 때 ‘알짜’로 분류되는 금융회사인 롯데캐피탈의 연간 순이익이 1000억원대다.

신한금융 내부에선 ‘베트남의 도약과 함께 오랜 현지화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 신한금융으로서는 1992년 베트남 금융시장 개방 직후 호찌민에 대표사무소를 설치하며 공을 들인 효과를 조금씩 보고 있다. 베트남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최근 수년간 6~7%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중국과 맞먹는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나이키 농구화에서부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까지 모든 물건이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95년 6월 문을 연 신한은행 호찌민지점은 국내 민간은행이 베트남 현지에 단독으로 설립한 최초의 지점이었다. 그에 앞서 제일은행이 베트콤(Vietcom)은행과 합작한 퍼스트비나은행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제일은행의 부실 사태 이후 2000년 조흥은행의 지분 인수로 조흥비나은행이 됐고, 2006년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을 거치면서 ‘신한비나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호찌민지점은 2009년 현지법인인 ‘신한베트남은행’으로 전환했다.

2016년 502억원, 2017년 470억원의 순이익을 내던 신한베트남은행이 지난해 1000억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거둔 비결은 ‘박항서 효과’로 분석되기도 한다. 신한베트남은행의 광고모델인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을 이끌며 베트남의 국민영웅이 됐다. 신한베트남은행 점포들의 외벽에는 박 감독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박항서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항서 효과보다 더 명쾌한 성공 비결은 90년대부터 시작된 현지화 노력이다. 신한금융의 베트남 진출 전략은 ‘관리’가 아니라 ‘녹아들자’ 쪽에 가깝다. 신한베트남은행의 현지직원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97%까지 늘었다. 30개 점포 가운데 14곳에서 베트남인이 지점장을 맡고 있다. 해외 법인에 발령나는 일이 ‘해외연수’처럼 여겨지던 건 옛날 얘기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현지 사정과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가 아니라면 베트남에서 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저금리,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된 한국에서 금융회사의 돌파구는 해외 진출일 수밖에 없다는 게 신한금융의 진단이다.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과 국민성을 눈여겨본 선견지명은 지금도 신한금융 임원회의에서 회자된다. 지난해 신한금융이 글로벌 사업으로 얻은 순이익 규모는 은행 당기순이익의 14%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이 비중을 2020년까지 20%로 높일 생각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