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유관순 열사役 맡은 건, 내 생애 가장 큰 용기” [인터뷰]

입력 2019-02-25 00:05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 열사 역을 소화한 배우 고아성. 그는 “우리 영화는 비극이나 참혹함에 집중하기보다 당시 우리 민족이 어떤 시도를 했는가를 조명한다”면서 “유관순 열사가 죽음이 아닌 삶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투옥된 유관순 열사(가운데)가 3·1운동 1주기에 수인들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는 3월 1일은 제 생애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3·1절이 될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거든요. 보시는 분들께도 제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배우 고아성(27)은 반짝이는 눈으로 얘기했다. 오전부터 시간대별로 이어진 인터뷰에서 감정이 복받쳐 수차례 눈물을 쏟았다는 그의 눈가엔 여전히 붉은 기가 어려 있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에서 유관순 열사를 연기하며 그가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과 책임감이 오롯이 전해진 순간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시나리오를 받고서 출연 여부를 떠나 유관순 열사와 8호실 수인(囚人) 25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이 일단 반가웠다”며 “도전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해본 건 처음이라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27일 개봉하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후 고향인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가 세 평(9.9㎡) 남짓한 서대문 감독 8호실에 갇혀 일제의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은 1년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강인한 신념에 찬 열사로서의 모습만 다뤄지는 게 아니라, 열일곱 소녀로서 느끼는 고민이나 후회 같은 내면적 감정들도 비춰진다. 고아성은 “시나리오에서 유관순이라는 이름을 지워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 그동안 그를 피상적으로밖에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촬영 초반에 감독님께 솔직하게 ‘힘들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이전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되려 하기보다 그냥 옆에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보는 이마저 고통스러운 고문 장면은 철저한 현장 준비 덕에 무리 없이 마쳤다. “스태프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찍었어요.” 고문 후유증으로 식음을 전폐하게 된 유관순을 표현하기 위해 5일간 금식을 하기도 했다. “건강에 이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임했습니다(웃음).”

3·1운동 1주년이 되는 날 감옥 안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고아성은 “유관순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난 상징적인 순간이었다”면서 “촬영 며칠 전부터 엄청나게 긴장을 했다. 촬영 당일에는 심장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갈 정도로 떨렸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만큼은 흥행에 대한 일말의 욕심도 없다고 했다. 그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자는 게 공동의 목표였다. 본인에게는 ‘인생작’이라 할 만큼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이렇게 큰 용기를 내본 건 생전 처음이에요. 용기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앞으로도 계속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