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가장 원하는 제재 완화·해제 카드는 아직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있다. 북한이 현재까지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 정도로는 제재 완화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제재 완화를 해주고 싶다”면서도 반대급부로 북한이 ‘의미 있는 무엇’을 해줄 것을 강조했다. 북한의 결단을 거듭 촉구한 것이다.
제재 완화·해제는 미국의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북한은 단계를 뛰어넘으며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어 북·미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은 정치·경제적 조치들로 나눠 북한에 협상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인 접근으로는 북한에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 설치 등 수교 전 단계 조치들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전선언 체결 등을 포함한 체제 보장 방안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조치로는 한국 정부의 설득을 수용해 제재 완화 대신 경제협력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양국은 현재 효력을 발휘하는 대북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대북 경협 방안 마련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이 미국의 단계적 접근법을 수용해 경협 제안 등에 만족할 경우 북·미 협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제재 완화를 끝까지 고수할 경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빈손 회담’ ‘정치 쇼’라는 비판 속에 성과 없이 끝날 것으로 우려된다. 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이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정 대신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서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다양한 발언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추가 만남을 거론했고, 전날에는 “서두르지 않는다”면서 속도 조절론을 재차 꺼내들었다.
연이어 나온 발언들 속엔 세 가지 메시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북 제재 완화를 해 줄 수 있지만 더 진전된 조치를 내놓으라는 요구다. 달리 해석하면, 북한이 지금까지 내놓은 카드로는 제재 완화는 어림도 없다는 완고한 뜻이 담겨 있다. 둘째로는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도 감지된다. 지금 시간에 쫓기는 것은 북한이지, 미국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나온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추가 회동을 시사한 것은 하노이 담판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이 내놓은 조치 중에서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 설치의 의미는 적지 않다. 북·미 수교의 첫 단추를 꿰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경우 평화협정을 뛰어 넘어 수교라는 정상 외교관계까지 구축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탐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락사무소는 언제든 폐쇄될 수 있는 불안한 장치라는 판단 때문이다.
경제협력 문제에 대한 협상은 더 복잡하다. 북한이 남북 경협 카드에 만족할지 여부가 1차 관문이다. 이어 북한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에 오케이를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제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2차 관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제재완화 해주고는 싶은데…” 北 액션 압박하는 트럼프
입력 2019-02-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