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다고 보는 연령의 상한(노동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높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989년 55세에서 60세로 늘어난 이후 30년 만이다. 판례상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늘어나면서 현행법상 ‘60세 이상’인 정년 기준을 더 높일지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고 등으로 숨지거나 일할 수 없게 된 피해자의 손해액 계산의 기준이 되는 노동가동연한이 늘어남에 따라 당장 자동차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관련 사고보험 지급액이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이에 따른 보험료 상승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수영장 풀에 빠져 사망한 아이의 가족인 박모씨 등이 수영장 운영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모두 2억5416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아이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을 60세가 아닌 65세를 기준으로 손실액을 다시 계산하라는 것이다. 하급심 재판부는 사망한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성인이 돼 군복무를 마친 2031년부터 60세가 되는 2071년까지 40년간 일했을 것으로 보고 예상 수입을 계산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판례 변경으로 일할 수 있었던 기간을 45년으로 늘려 적용하면 배상액은 1000만원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가동연한 기준을 변경하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 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개선돼 기존 가동연한을 정한 판결 당시 경험칙의 기초가 됐던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했다”고 밝혔다. 30년 전 가동연한을 60세로 올린 이후 인구 고령화로 더 오래 일할 필요가 커지고 법적 정년도 연장되는 등 사회경제적 환경이 바뀐 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0세로 보아온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5세까지도 가동할(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판례 변경으로 현재 60세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출하고 있는 자동차보험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손해보험업계는 지난해 11월 열린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가동연한을 65세로 조정할 경우 약 1.2%의 자동차보험료 인상 요인이 발생해 손해보험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 증가가 예상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판례 변경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상 정년 연장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 등까지 ‘복지 공백’이 크다는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65세까지는 일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 정년 연장을 논하기보다 사회보장제도 확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판례 변경을 환영하면서도 “사회 안전망 확보 없이 70세 가까이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육체노동 가능나이 이제 65세… 대법, 30년 만에 60세서 판례 변경
입력 2019-02-21 19:10 수정 2019-02-21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