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의 적인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둘러싼 갈등 끝에 미국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겨냥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베네수엘라를 둘러싸고는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치열한 원조경쟁을 벌이며 영향력 과시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연방의회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면 러시아는 대칭적이고 대등한 행동을 검토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직접적 위협이 발생하는 지역뿐 아니라 미사일 사용 결정을 내리는 지휘부가 위치한 지역을 향해 사용할 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미국이 근거도 없이 INF를 탈퇴했다며 “미국 측은 조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기 위해 러시아를 상대로 억지로 만들어낸 혐의를 제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거리 핵미사일의 생산과 실험을 금지하기 위해 1987년 소련과 체결했던 INF에서 최근 탈퇴했다. 러시아가 신형 순항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조약을 위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러시아는 미국이 INF를 무리하게 탈퇴한 것이 유럽 내 동맹국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에 배치할) 미사일이 모스크바까지 날아오는 시간은 10~12분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에게 아주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 본토 공격까지 언급한 것은 INF 파기 이후 미사일 개발 등 군비경쟁이 계속될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원조 문제로도 충돌했다. 러시아 정부는 19일 베네수엘라에 의약품과 의료장비 300t을 지원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원조 물품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 사실을 밝히며 러시아의 조치를 반겼다.
반면 미국이 지난 7일 보낸 원조 물품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반입되지 못한 채 콜롬비아 국경에 쌓여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원조 물품을 빌미로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인도적 원조가 정말 필요하다면 이러한 일에 전문성을 가진 유엔기구를 활용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국 국제구호단체 머시코 관계자는 “원조가 미국과 베네수엘라 정부 간 정치적 체스 게임의 담보물이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원조가 정치적 미끼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험악해지는 美·러… 푸틴 “美에 미사일 겨냥할 수도”
입력 2019-02-2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