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의 당신과 함께한 한 컷] 영원의 길에 들어서는 단 하나의 문, 사랑

입력 2019-02-22 18:05
주인공 줄라(왼쪽)와 빅토르는 냉전의 시대도 막지 못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준다. 아이엠 제공
성현 필름포럼 대표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곳에서 사랑만큼 무용해 보이는 것은 없다. 사랑은 측정도, 예측도 불가능하다. 도무지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 대신 다른 것으로 그 자리를 채우며 통제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힘으로 질서를 조소하며 관습으로 변화를 무력화시킨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서서히 죽어간다. 사랑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영화 ‘콜드 워’는 사랑이 우리 앞에 당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관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주인공 빅토르(토마스 코트)는 자유를 이미 경험한 중산층의 음악가다. 폴란드 정권에서 생존을 위해 일하다가 민속음악단원으로 뽑힌 줄라(요안나 클라크)와 사랑에 빠진다. 빅토르는 음악을 공산국가 체제의 선전 수단으로 삼는 것에 환멸을 느끼며 그녀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한다.

그러나 줄라는 체제 밖의 자유보다 체제 안의 안정을 택한다.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연인은 폴란드 바르샤바를 시작으로 독일의 베를린, 유고슬라비아의 스플리트, 프랑스의 파리를 넘나들며 15년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콜드 워’는 이들을 사랑의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조국인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에 휘말리며 약소국으로 겪어야 했던 시대적 한계는 개인의 삶과 사랑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이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흘리네. 검은 눈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라는 메인 주제곡인 ‘심장’은 폴란드 민속음악부터 재즈까지 세 번에 걸쳐 흐른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이탈하며 변주를 거듭하던 이들의 삶을 대변해준다. 험난한 이 여정은 사랑만이 들어설 수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누린다.

사랑을 하나의 감정쯤으로 여기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라 여기는 이들에 의해 관계는 신비감을 잃어간다. 사랑은 그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승우는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고백은 실은 ‘사랑이 별거냐?’는 오만한 선언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근거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기 쉽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이 그의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즉 그가 곧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물을 이유가 없다.”

줄라는 고단했던 사랑의 여정만큼이나 허물어진 성당의 제단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며 빅토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난 당신 거야. 영원히 언제까지나.”

그렇다. 사랑은 정복당하는 것이고, 속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를 갈구하던 이들이 스스로 매임의 길에 들어서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의 힘이고, 속성이다. 사랑은 유한한 세상에서 영원의 길로 들어서는 단 하나의 문이다. ‘콜드 워’가 흑백 영화이면서도 찬란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 7:10)

<성현 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