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 넘어야 할 5개의 산, 노조의 반대, 사업주의 악용, 휴식권…

입력 2019-02-21 04:00

노사정이 ‘사회적 합의’의 물꼬를 트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지만 넘어야 할 5개의 산이 남아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합의문만 봐도 논란을 부를 문구들이 숨어 있다. 사회적 대화에 아예 참여하지 않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반발이라는 암초도 숙제다. 노동 현장에 맞는 미세조정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합의라는 상징성마저 빛이 바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력근로제 노사 합의안 앞에 놓인 산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①‘노조에 맡겨진 선택권’이다. 노사정은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때 ‘노사 협의’로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노조에서 반대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탄력근로제 도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이나 석유·화학·철강·건설 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기업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해 도입하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나올 수 있다.

이래서 ②‘민주노총의 행보’가 변수로 떠오른다. 민주노총에 소속된 사업장의 노조에서 탄력근로제 도입을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9만5861명이다. 산별노조 중에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나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처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밀접한 산업군이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은 20일 전국 확대간부 상경 결의대회까지 긴급하게 열면서 반발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보다 강력하게 조직해 탄력근로제 개악·야합을 분쇄하겠다”고 강조했다.

③‘사업주의 악용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노조가 없는 중소·중견기업이 대표적 허점으로 꼽힌다. 노조가 없어도 근로자 대표 자격은 ‘소속 근로자의 과반을 대표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직급이 높은 이들이 권한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업주가 밀어붙이는 경우를 무시할 수 없다.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은 19일 브리핑에서 “노조가 없는 곳에서 남용되는 것을 제일 고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탄력근로제가 정착된 독일의 경우 노동법원 차원에서 사업주 위주의 탄력근로제 적용을 제한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소송으로 번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합의문에는 과로를 방지하는 장치가 견고하지 못하다(④부실한 과로방지책). 노사정은 합의를 통해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에 최소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권을 의무화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경우의 수’를 더한 게 옥에 티다. 합의문은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고 덧붙였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휴식 없는 연속 근로’를 밀어붙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탄력근로제 시행에 따른 초과근로수당 보장이 명확지 않다(⑤흐릿한 임금보전). 사업주가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장관한테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규제를 더했지만 차라리 ‘과태료’를 택하는 사례가 등장할 여지도 있다. 실효성 있는 수준의 과태료를 법에 명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초과근로한시간을 저축했다가 몰아서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계좌’와 같은 대안을 도입하는 게 낫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신고 업체는 이행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며 “미신고 업체가 있다면 근로감독으로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