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골 남원 찬바람 불지만…“공공의대 생긴다니 한가닥 희망”

입력 2019-02-21 21:33
지난 19일 찾은 전북 남원시 서남대 운동장은 잡풀이 우거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운동장 한쪽에 세워진 이정표도 기울어진 채 곧 쓰러질 것처럼 보여 쓸쓸함을 더했다.
남원의료원 주변을 촬영한 것으로 건물 왼쪽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 곳에 2022년 국립공공의료대학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북 남원의 서남대는 더욱 스산해진 모습이었다. 지난 19일 다시 찾은 서남대 운동장엔 잡풀이 무성했다. 주차장 한쪽엔 대형 차량 서너 대가 잠을 자는 듯 서 있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역의 유일했던 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짓다 만 건물은 부슬부슬 봄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흉물스럽게 보였다.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후문 옆에서 15년째 사진관을 운영하는 소인호(60)씨는 낯선 기자의 방문에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없다”며 “음식점은 물론 편의점 당구장 등 대부분 문을 닫았고 원룸도 거의 비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몇몇 원룸은 월세를 대폭 낮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내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남대는 개교 27년 만인 지난해 2월 28일 문을 닫았다. 서남학원 설립자 이홍하씨의 비리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대학과 지역사회의 처절한 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쇄 명령을 내렸다.

이후 춘향골 남원엔 봄의 기운이 사라졌다. 2000여명의 학생들은 새로운 학교를 찾아야 했고, 250여명의 교직원들도 새 직장을 찾아 떠나야 했다. 대학 상권은 그대로 몰락했고 지역 경제도 휘청거렸다.

“서남대 학생이랑 직원이 한때 1만명 가까이 됐어요. 대학 때문에 남원시내 음식점과 주점 등이 북적였죠. 젊은 학생들로 도시가 활기가 넘쳤어요. 그러나 이젠 끝이에요.”

시민 양경근(60)씨는 “밤 9시만 되면 시내에 사람이 없다”며 “남원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고 씁쓰레했다. 남원시민들은 1년 전까지 “서남대가 문을 닫으면 직원 1000명이 일하는 공장이 문을 닫는 것과 같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대학을 살려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쳤다. 안타깝게도 우려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폐교 이후 다른 대학에 편입한 학생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학생이 새 학교를 찾지 못해 학적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2~2014년 문 닫은 전국 3개 대학 학생들의 편입률은 44%에 그쳤다.

교직원들 가운데 새 일터를 찾은 비율은 학생보다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였던 A씨는 “뿔뿔이 흩어진 뒤 동료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새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도 시간강사 등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서남학원은 현재 청산 작업중이다. 지난해 5월 관선이사였던 5명이 청산인으로 선정돼 모든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 중이다. 지난달까지 석 달간 채권신고를 받았다.

교직원들의 임금 체불액은 이자를 합쳐 3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병원 2군데 등 여러 곳에서 400억여원의 채권을 신고해 와 진위를 파악하고 있다. 청산인 대표 이홍기(60) 우석대 교수는 “다음 달 말까지 회계법인의 검증을 통해 면밀히 채권심사를 마칠 계획”이라며 “4월중 채권자 회의를 거쳐 자산 매각 이후 밀린 임금부터 우선 지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른바 ‘비리 사학 먹튀 방지법’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돼 심리적인 안도감을 주고 있다. 개정된 사립학교법 제35조는 사학 비리 당사자가 대학을 폐교하고 학교법인을 해산할 때 잔여재산을 자신의 친인척 등이 운영하는 다른 교육기관에 넘기지 못하도록 막았다.

법 시행 당시 청산이 종결되지 않은 학교법인에도 개정 내용이 적용되기로 해 서남대가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남학원의 자산은 남원과 충남 아산의 캠퍼스, 남원의 병원 1곳, 광주의 병원 2곳 등이다. 합치면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청산 이후 상당 액수가 남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기치 못한 채권 신고가 들어와 변수가 되고 있다.

그래도 시민들에게 한가닥 희망의 빛으로 떠오른 것은 ‘국립공공의료대학’ 설립이다. 지난해 4월 남원에 ‘국립공공의료대학’ 설립이 확정돼 뻥 뚫린 지역민들의 가슴에 한줄기 위안을 주고 있다. 물론 서남대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아 양에 차지 않지만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대학은 2022년 개교를 목표로 빠르게 설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학년별 정원 49명으로 하는 4년제 의료대학원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설립 예정지는 남원의료원 인근 2곳(6만4600여㎡)으로 확정돼 발표만 남겨 놓고 있다.

남원시도 지역 활력을 되찾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전국 처음으로 공공의료대학이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유관기관을 많이 유치해 남원을 공공의료의 중심지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1년 전의 좌절과 절망감은 지금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작은 희망을 보고 있다”며 “공공의료대학이 들어설 남원의료원 일대와 옛 서남대 부지를 연계해 도시재생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원=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