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서두르지 않는다” 5번 언급, 주도권 잡기 혹은 목표 낮추기

입력 2019-02-21 04:00
미국 국무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20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맞이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비건 대표는 하노이 현지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하기 위해 19일(현지시간) 워싱턴을 출발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하면서 비핵화 ‘속도 조절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I’m in no rush)”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표현을 바꿔가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또 “나는 긴급한 시간표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핵·미사일) 실험이 없는 한 서두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언론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하면서도 ‘속도, 속도, 속도’를 외친다”며 언론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전한 뒤 “우리는 서두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미국은 급할 것이 없다’며 북·미 협상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목표치 낮추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동시에 제기된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시간에 쫓기는 것은 북한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완화에 목을 맨 북한에 속공보다 지공(遲攻)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 속엔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 성급한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셀프 다짐과 제재 완화를 지렛대로 삼아 향후 북·미 협상을 유리한 구도로 이끌겠다는 전략이 함께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물 건너간 것을 깨닫고 정치적 탈출구로 속도 조절론을 다시 꺼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손 회담’이라는 역풍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것이다. 미국민을 향해 서두르면 성과를 낼 수도 있으나 신중하게 가기 때문에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는 사전 양해의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압박용이라는 제3의 해석도 있다. 미국 측 협상 실무진을 통해 북한의 강경한 스탠스를 전해 듣고,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의 카드를 내놓지 않을 경우 제재 완화 등 선물을 손쉽게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궁극적으로(ultimately)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한 것도 묘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현 단계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가 유지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낙관론을 접지 않았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재회에 대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매우 성공할 것”이라며 “매우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하노이 정상회담이 27∼28일 열리는 것을 거론하며 “매우 흥미로운 이틀이 될 것”이라며 “많은 것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정상회담 전날인 26일 하노이에 도착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