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찬송가 363장 작사자는 루터 아닌 피터스 목사

입력 2019-02-22 18:16
알렉산더 피터스(한국명 피득) 목사는 구약의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촬요’(1898년)를 출판하는 등 한국선교 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었다. 사진은 피터스 목사의 청년 시절 모습. 교회음악아카데미 제공
찬송가 부록에 실린 작사자 색인엔 마르틴 루터의 찬송이 두 장이나 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는 워낙 유명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는 찬송가가 새로 나올 때마다 작사자가 다르게 표기된다. 개편찬송가(1967)는 작자 미상, 새찬송가(1972)는 시편 130편, 통일찬송가(1987)는 피득(A.A.Pieters, 1898), 21C찬송가(2008)와 한영찬송가(2010)는 루터(M.Luther)로 나온다. 어느 주장이 맞는 것일까.

서로 다른 찬송가 363장 작사자

교회음악아카데미(원장 김명엽)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아카데미 사무실에서 국민일보 단독 인터뷰를 통해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의 작사자는 루터가 아닌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한국명 피득, 1871∼1958) 목사”라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김명엽 원장은 지난해 10월 ‘종교개혁 주일’을 기념해 우리 찬송가에 실린 마르틴 루터의 찬송을 선곡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세계적인 찬송가 연구기관 ‘칼빈연구소’를 비롯해 전 세계 교회에서 부르는 루터의 독일어 찬송과 번역 찬송, 피터스의 ‘시편촬요’와 선교 보고서, ‘찬셩시’(1898), 피터스의 시에 곡을 붙인 미국 찬송가 N.L.D.(New Laudes Domini),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모든 찬송가와 피터스 논문 등을 참고했다.

많은 이들은 시편 130편을 운율 시로 만들었다. 유난히 시편 130편을 좋아한 루터는 1523년 독일어 찬송시(표① )인 ‘Aus tiefer Not schrei’ ich zu dir’를 ‘8.7.8.7.8.8.7’ 운율(Aus① tie②-fer③ Not④ schrei’⑤ ich⑥ zu⑦ dir⑧/Herr① Gott,② er③-hor’④ mein⑤ Ru⑥-fen,⑦)에 맞춰 지었다. 이런 이유로 루터의 곡을 영어로 번역한 윙크워드(Catherine Winkworth)의 찬송가(표②) 첫 소절은 ‘Out of the depths I cry to Thee’로 시작한다. 여러 나라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루터의 이 찬송가는 당연히 ‘8.7.8.7.8.8.7’ 운율이다.

그러나 피터스가 작사한 찬송가(표③)의 운율은 ‘7.7.7.7.7.7.7’(내① 가② 깊③ 은④ 곳⑤ 에⑥ 서⑦/주① 를② 불③ 러④ 아⑤ 뢰⑥ 되⑦)이다. 현재 찬송가 오른쪽 위쪽에는 운율 표기가 있는데, 363장의 오른쪽 상단엔 ‘7.7.7.7.7.7.7’로 표기돼 있다. 운율 표기 자체는 피터스의 작품임을 나타낸 것이다.

또 다른 증거도 있다. 한영찬송가 악보 아래편에는 찬송가의 첫 소절이 표기된다. 루터의 시라면 당연히 영어로 번역된 ‘Out of the depths I cry to Thee’로 나와야 하는데 363장엔 ‘From① the② deaths③, O④ Lord⑤, I⑥ cry⑦’로 적혔다.

김 원장은 “외국에서 루터의 시로 작곡된 찬송 대부분 곡조는 ‘시미시도시솔라시’인데, 우리의 곡조 ‘솔미파솔도레도시도’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한국찬송가공회는 363장 작사자를 루터에서 피터스로 바꿔야 한다”고 요청했다.




언어의 천재, 히브리어 시편을 번역

피터스 목사는 1898년 구약의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촬요’를 출판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구약성경의 토대가 되는 ‘개역 구약성경’(1938년)의 완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피터스 목사가 한국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사역을 감당했지만 그의 사역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871년 제정러시아시대에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암송했다.

성인이 된 후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인 선교사 피터스를 만나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세례를 준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다. 피터스 목사의 본명은 ‘이삭 프룸킨’이었다. 러시아어 히브리어 독일어 등을 통달한 그는 한국에 와서 2년 남짓 한국어를 배운 후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냈다.

시편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14편의 시편을 찬송가로 부를 수 있도록 가사화했다. 이사야 53장을 두 편의 찬송가 가사로, 사무엘상 2장에 나온 한나의 기도를 한 편의 찬송가 가사로 만들었다. 이렇게 작사한 17편의 찬송가가 ‘찬셩시’ 제2판에 수록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를 지었다.

김 원장은 “피터스는 시편이 읽는 책이 아닌 노래로 부르는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편을 찬송가로 부르도록 작사한 것”이라며 “그는 한국 시의 운율을 완전히 터득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회음악아카데미는 다음 달 10일 오후 3시 피터스 목사가 세운 서울 세곡교회에서 ‘알렉산더 피터스의 시편촬요와 운율 시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찬셩시’에 실린 피터스 목사의 찬송 17편 전곡을 함께 부르는 세미나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