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영화 배급시장에서 가장 이목을 끈 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의 약진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디즈니는 관객 점유율 13.9%로 전체 배급사 가운데 롯데엔터테인먼트(18.1%)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디즈니가 이처럼 높은 순위에 오른 건 처음이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본사 월트디즈니는 이미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했다. ‘토이스토리’ 등을 만든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 필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거대 세계관을 거느린 마블 스튜디오에 이어 메이저 영화사 이십세기폭스까지 인수하며 디즈니는 영화계 공룡으로 거듭났다.
이십세기폭스와의 인수 합병이 마무리되는 올해, 디즈니의 공세는 한층 매서워진다. 개봉 예정작들이 쟁쟁하다. 마블의 야심작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3, 4월 차례로 내놓고 실사영화 ‘덤보’ ‘알라딘’ ‘라이온 킹’도 선보인다. 고정 팬덤을 보유한 ‘토이스토리4’ ‘엑스맨: 다크피닉스’ ‘스타워즈: 에피소드9’을 비롯해 1000만 기대작 ‘겨울왕국2’도 대기 중이다.
국내 배급사들의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디즈니가 자사 작품들의 배급 시기를 고루 조정해 배치하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여의치 않아졌다. 디즈니는 호기롭게 몇몇 작품들의 개봉 시기를 일찌감치 공표하기도 했다. 특히 전통적 성수기로 통하는 여름과 겨울 시장을 선점했다. ‘라이온 킹’은 7월, ‘겨울왕국2’는 12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한 국내 배급사 관계자는 “‘라이온 킹’의 경우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 만큼 폭발력을 갖고 있고 ‘겨울왕국’은 이미 작품성과 흥행성이 검증된 콘텐츠”라면서 “이전에는 디즈니 작품이 전통 성수기에 들어왔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여름·겨울 성수기 라인업을 짤 때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외형적 규모뿐 아니라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내용과 주제를 갖췄다는 게 디즈니 영화의 강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디즈니는 대체로 가족영화를 추구하고 판타지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공유한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겹치는 면이 있다. 앞으로 한국영화는 그와 차별화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디즈니의 글로벌 파워는 점차 막강해질 거라는 게 영화계의 공통적 견해다. 한 관계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마블 캐릭터도 많은데 이십세기폭스가 가지고 있는 라인업까지 시리즈로 개발해나간다면 디즈니의 영향력은 더 확대될 것이다. 기존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는데, 앞으로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의 ‘4강 체제’로 굳혀졌던 국내 배급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해외 배급사의 공세를 막는 건 불가능하므로 선의의 경쟁으로 가야 한다. 다만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 더불어 나누는 ‘문화의 논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어벤져스 가면 겨울왕국 오고… 몸집 커진 디즈니의 위협
입력 2019-02-21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