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용어 바로 알기] 창세기서, 민수기서, 룻기서, 욥기서?

입력 2019-02-21 00:02

일반적으로 한자는 중국 춘추시대에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전 108년에 고조선이 한(漢)나라에 패망한 후 우리 고유의 언어인 한국말은 지켰으나 중국의 영향력 속에 오랜 세월 동안 한자가 문어(文語)의 역할을 하게 됐다. 지금도 많은 문서와 언어생활에서 국한문혼용(國漢文混用)이 이뤄지고 있다. 국한문혼용은 종종 불필요한 중복과 의미적 반복을 만들어 내는데, 이런 현상은 ‘창세기서’ ‘민수기서’ ‘룻기서’ ‘욥기서’ 등과 같이 성경의 각 권을 일컬을 때 나타난다.

룻기는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이 됐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된 룻(Ruth)에 대한 기록이다. 이미 룻기(룻記)라는 명칭이 룻에 대한 이야기임을 내포하고 있는데 거기에 또다시 ‘서(書)’라는 말을 덧붙여 ‘룻기서’라고 하면 의미상 중복표현이 된다. 창세기도 천지창조에 관한 기록 혹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민수기, 신명기도 이미 기록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예배와 성경 공부 모임에서 성경의 장, 절을 성도들과 나눌 때 ‘창세기서, 신명기서, 민수기서 몇 장 몇 절’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이런 중복표현은 ‘기’로 끝나는 구약성경을 지칭할 때만 나타난다. 한글 성경은 구약의 역사적인 기록에는 ‘기(記)’를, 신약의 편지 형식 글에는 ‘서(書)’를 붙이고 있는데 성경 66권 가운데 ‘기’로 끝나는 성경은 모세5경을 비롯해 구약에만 8권이 있다. ‘서’로 끝나는 성경은 신약에만 21권 있는데 로마서나 고린도전·후서와 같은 서신서에만 붙이고 있다. 따라서 ‘민수기서’라고 한다면 ‘기’와 ‘서’의 불필요한 중복일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서신서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장, 절을 말할 땐 불필요한 중복을 없애고 ‘민수기 사사기 룻기 욥기 몇 장 몇 절’이라고 해야 한다.

이상윤 목사(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