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이후 첫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간 노동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절충안을 찾는 데 실패해 왔던 노사정이 접점을 찾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노사 합의 결렬→국회·정부 강행 처리→노사 반발’이라는 악순환을 끊었다는 평가다. 노사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하면서 국회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19일 도출한 합의문을 토대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경사노위에서 정말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며 “경영계와 노동계가 동의한 합의안을 존중해서 입법 과정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민주당은 경사노위 합의안처럼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
야당도 탄력근로제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확대폭에서 이견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해 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줄곧 1년을 요구해 온 경영계 입장이 반영되지 못해 우려스럽다”며 “합의를 존중하되, 각 의원 개정안을 꼼꼼히 살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 이런 분위기는 노동계가 경영계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유력한 상황이라 무작정 대화를 결렬시키기보다는 ‘얻을 수 있는 건 얻자’는 실리적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다. 노동계는 단위기간 확대를 받아들이는 대신 건강권과 임금보전을 받아냈다. 단위기간이 3개월을 넘을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의무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마련을 합의안에 담았다.
또한 이번 합의안 도출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무게를 지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경사노위 합의는 타협과 양보의 정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 기구를 표방하는 경사노위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실제 지난해 11월 경사노위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공익위원안을 도출하는 데 그쳤다.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 반대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노동계는 논의의 범위를 두고 불만을 표출하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에도 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당시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라는 안건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에 상여금 등 수당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노동계는 산입범위 확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한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노사 절충안을 만들지 못하면서 ‘총대’를 국회가 메야 했다. 후폭풍도 상당했다. 민주노총은 국회의 강행 처리 움직임에 반발해 모든 노사정 대화 불참을 선언했고, 아직도 경사노위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다.
이제 유일한 걸림돌은 국회 파행이다. 5·18 망언 의원 징계, 손혜원 의원 국정조사 등을 두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오는 27~28일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등 주요 정치 이벤트도 예정돼 있다. 정치권에선 이달 안에 임시국회를 열기 어렵다고 관측한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국회만 열린다면 여야가 큰 쟁점 없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한 입법 논의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사가 탄력근로제 합의에 집중하면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의제들이 경사노위의 숙제로 남았다. 경영계는 탄력근로제와 함께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확대를 강하게 요구했었다. 노동계 역시 포괄임금제 금지라는 의제를 제시했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세종=정현수 기자, 김판 강준구 기자 jukebox@kmib.co.kr
노동계 ‘건강권·임금 보전’ 받아내고 경영계 요구 수용
입력 2019-02-19 18:59 수정 2019-02-20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