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분자 놀이터 돼선 안돼”… 한국당 안팎서도 우려 확산

입력 2019-02-20 04:02
나경원(앞줄 뒷모습)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 4대(경제·안보·정치·비리) 악정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뉴시스

2·27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극우 세력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현재까지 치러진 두 차례의 합동연설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탄핵’ 등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일부 후보와 당 지도부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부 지지자들의 행태로 전대가 ‘과격분자들의 놀이터’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당내에서는 “보수정당의 품격이 바닥에 떨어졌다”며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극우 세력을 쳐낼 방안은 마땅치 않다.

비박근혜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과격한 사람들이 결국 일을 그르친다”면서 “당이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김진태 당대표 후보의 극성 지지자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김 후보를 윤리위에 회부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야유와 욕설을 퍼부은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준교 청년 최고위원 후보도 합동연설회에서 문 대통령 탄핵 요구와 함께 ‘저딴 게 대통령’ ‘민족반역자’ ‘처단해야 한다’ 등의 폭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충분한 자정 능력으로 당이 거듭날 수 있다”고 했지만 당내에서도 최근 태극기 세력의 전면 부상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의원은 “태극기 부대가 당의 얼굴처럼 자리매김할수록 당은 집권에서 멀어진다”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 등 여권의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왜 우리가 자폭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개혁 보수 유권자와 극우 유권자 간 분열로 전당대회가 ‘분당(分黨)대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을 극우 정당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였는지 투표로 증명해줘야 할 것”이라며 “이제 건강한 당원들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도 한국당 전대를 ‘잔당(태극기 세력 잔당)대회’ ‘망언대회’라고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박관용 한국당 선거관리위원장은 “향후 합동연설회에서는 사전에 주의를 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이것이 당심이고 민심”이라고 외쳤던 김진태 후보도 논란이 커지자 지지자들에게 “앞으로는 보다 품격 있는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태극기 세력의 맹위가 전대에서 실제 표심으로 드러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해 입당한 태극기 세력이 6000~1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체 책임당원 32만8000명 중 2~3%에 불과하다. 한 당직자는 “태극기 부대가 실제 표심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본 반면, 다른 관계자는 “전체 유권자의 10%가 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이 결집한다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TV조선이 중계한 당대표 후보들의 세 번째 방송토론회에선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오세훈 후보만 O를 들었고, 황교안·김진태 후보는 X를 표시했다. 황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돈 한푼 받은 것이 입증되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탄핵된 것이 타당한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황 후보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으로, 최근 당의 우경화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종선 이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