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아름다운 달빛동맹

입력 2019-02-23 04:01

광주와 대구는 각각 진보와 보수의 상징성을 띤 지역이다. 지역주의 정치의 대칭점에 서 있다. 그런데 둘 사이를 잇는 가교가 있다. 이른바 ‘달빛동맹’이다.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과 광주의 순우리말 ‘빛고을’이란 이름에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달빛이라는 명칭은 아무리 봐도 정말 잘 지었다. 누가 처음에 아이디어를 냈는지 몰라도 상을 받을 만하다. 2009년 의료산업 협약을 계기로 만들어진 뒤 2013년 달빛동맹 강화 협약을 체결한 이후 두 도시는 정기적으로 교류를 확대해 왔다. 달빛고속도로, 달빛내륙철도 등 여기서 파생된 명칭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이 최근 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을 사과하는 메시지를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보냈다. 권 시장은 메시지에서 “저희 당 일부 의원들이 저지른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5·18 정신을 훼손하고 광주시민에게 깊은 상처와 충격을 안겨드려 한국당 소속 대구시장으로서 충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럴 때일수록 대구·광주 시민들이 연대와 상생협력을 더욱 단단하게 해서 역사 왜곡과 분열의 정치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시민사회단체들도 5·18 망언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시장은 “결코 쉽지 않은 권 시장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된다”며 “대구시민의 깊은 형제애가 절절하게 느껴진다”고 화답했다. 지역주의와 상호적대가 판을 치는 정치판에서 모처럼 눈길을 끈 소식이다.

지난해 5월 18일 30여명으로 구성된 대구시 방문단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구시의 5·18 기념식 참석은 2014년부터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광주시도 이때부터 매년 대구 2·28민주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시장들도 별일이 없는 한 교차 방문하고 있다.

광주 5·18은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선 저항으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모태 역할을 했다. 대구 2·28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의 장기 독재에 맞서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저항으로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이 시장이 권 시장에게 “4·19의 불을 당긴 대구 2·28과 광주 5·18이 민족운동사에 새로운 전기가 됐듯 달빛동맹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 따른 것이다.

5·18과 2·28은 특정 지역이나 진영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역사다. 이런 점에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망언은 가당치도 않다. 보혁 논쟁이나 지역 간 선의의 경쟁이라면 몰라도 이념갈등과 지역감정을 자극해 정략적 이득을 노린다면 역사는 물론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광주에 내린 폭설을 대구시 공무원들이 가서 치운 적이 있다. 이들은 1박2일 동안 제설작업을 하고 다목적 제설차량 1대, 15t 덤프트럭 4대, 소금 50t도 지원했다. 대구시는 2016년 1월에도 광주에 폭설이 내리자 2박3일간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신세를 갚기 위해 대구에 폭설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도시는 체육·문화예술·관광·자원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경제 교류와 공동 협력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범죄 예방을 위한 법조계 교류를 비롯해 젊은이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달빛오작교 등 성공적인 프로그램도 많다.

달빛동맹은 고질적인 지역과 이념 갈등, 혐오를 넘어서려는 일종의 실험이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동맹으로 자리잡아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끄는 성공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