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도 안성시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청년농부사관학교 1기 졸업식이 열렸다. ‘야구점퍼’를 맞춰 입은 22명 교육생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으로 빛났다. 졸업장이 건네지고 가족들의 꽃다발까지 받아들자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6개월 동안 스마트팜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야외에서 농기계 작동법을 배우다보니 그들은 어느새 ‘진짜 농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교육생 대표로 나선 이석휘씨는 “농업 기초기술도 배웠지만 무엇보다 먼 미래에 어떤 농부가 되겠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한국을 넘어 세계와 경쟁하는 농부로 거듭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청년농부사관학교를 졸업한 뒤에 시설하우스를 세워 ‘애플수박’을 재배할 계획이다. 어른 주먹만한 크기에 당도가 높고 껍질째 먹는 미니 수박이 애플수박이다. 그는 교육을 받으면서 딴 드론조종자 자격증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이씨는 “방제, 파종, 촬영 등으로 드론을 활용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드론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정예 청년농부 육성을 목표로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가 만든 교육프로그램이다. 교육생들은 농작물을 심거나 씨를 뿌리는 기초부터 농기계 작동, 스마트팜 운용, 농작물 수확, 영업·마케팅, 유통·판매까지 농사의 모든 단계를 직접 체험하며 배웠다. 6개월 동안 미래농업지원센터 안에 마련된 숙소에서 합숙하며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를 지었다. 총 교육시간은 880시간(이론교육 340시간·현장실무교육 540시간). 단순하게 농사 기술을 갖춘 기술자가 아닌 현장경험과 전문기술을 동시에 지닌 ‘농업 사업가’로 태어날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1기 졸업생들은 지난해 9월 3일부터 올해 2월 22일까지 합숙교육을 받았다. 23명이 입학했지만 1명은 지난해 11월 창업을 하겠다며 자퇴했다. 이를 빼고는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청년 농부로 거듭났다. 교육생들은 팜파티 자격증, 농산물 유통전략과정, 소셜미디어 활용 마케팅, 농업경영컨설팅 과정 등의 수료증을 받기도 했다. 정남교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원장은 “대학교 교육과정에 비춰보면 2년 이상 배워야 할 것을 6개월 합숙으로 집중해서 습득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농업 관련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도 교육을 다 받고 나면 농사를 곧바로 지을 수 있는 농부로 탈바꿈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농부사관학교 졸업생들은 모두 드론조종자 자격증을 땄다. 드론은 농업에서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보통 8시간 걸리는 작업이 1~2시간으로 줄어든다. 농민 상당수가 고령층이라 드론 조종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젊은 인력 수요도 크다. 때에 따라 드론조종자로 부업을 뛸 수도 있는 셈이다. 졸업생 윤영준씨는 “벼농사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농약값을 절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농사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자기능사 자격증, 지게차 자격증을 딴 졸업생도 있다. 종자기능사는 모든 작물의 출발점인 씨앗 품종을 연구·개발·재배·생산·관리하는 직업으로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한다. 수십년을 농업에 종사한 이들도 따기 어려운 자격증으로 알려져 있다. 종자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쥔 최지웅씨는 “농업 현장경험이 부족하면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데 이론·실습 교육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한 김병용씨는 “수확물을 운반하기 위해 별도의 인건비 등을 쓰지 않아도 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졸업생 22명은 ‘농부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5년 동안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했던 이우상씨는 포도 농부로 변신할 계획이다. 그는 “부모 소유의 땅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서 샤인머스킷 포도 농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농업지원센터는 농업을 포기하는 교육생이 없도록 사후관리도 한다. 정 원장은 “졸업 후에도 자금·기술 지원 등의 케어링 시스템을 운영해 청년 농부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만 40세 미만의 농업 창업 희망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00만원의 교육비를 내야 하지만 6개월 동안 숙식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교육생 간 협동정신을 저해하면 퇴교 처리되는 등 엄격한 관리가 이뤄진다.
6개월을 연속으로 합숙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2기 교육생부터는 3단계(2개월씩 교육)로 교육과정을 쪼갤 예정이다. 예를 들어 2개월 동안 이론습득 등의 1단계 교육을 마친 뒤 잠시 휴학을 하면 나중에 다른 기수의 2~3단계 교육과정에 재입학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정 원장은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운영해본 뒤 2021년에 완성된 프로그램으로 1년에 500여명의 청년 농부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안성=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6개월 뒤엔 ‘드론 파종’ 정예농부… 취업 걱정 없는 이곳은?
입력 2019-02-2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