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아내·삼둥이와 부대끼다보니 연기내공 쌓였죠”

입력 2019-02-20 04:01
블랙코미디 연극 ‘대학살의 신’으로 2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배우 송일국. 그는 “연기 인생에서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중요한 작품이다. 소극장에서 관객과 가까이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최정원과 함께한 극 중 장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송일국(48)이 익살맞은 블랙코미디로 돌아왔다. 지난 16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연극 ‘대학살의 신’(연출 김태훈)은 교양이란 가면 안에 가려져 있던 현대인의 민낯을 90분간 시원하게 까발린다. 송일국은 자수성가한 생활용품 도매상으로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공처가 미셸 역을 맡았다.

“아내(판사 정승연)가 친구들이랑 연극을 봤는데 웃음 터지는 부분이 다 달랐다고 하더라고요. 등장인물 4명의 색깔이 다 강렬해요. 성적 묘사같이 숨겨진 장치도 많아서 두세 번 보시면 눈에 들어올 거고요. 2017년 첫 공연 때를 잊을 수 없는데, 정말 빵빵 터졌어요. 웃음 욕심에 나중엔 산으로 간 부분이 없잖아 있었죠(웃음). 이번엔 블랙코미디 본연의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내용은 이렇다. 알랭(남경주)·아네트(최정원) 부부의 아이가 미셸·베로니크(이지하) 부부 아이의 앞니를 싸우다 부러뜨린다. 이를 계기로 고상하게 출발한 두 부부의 만남은 어느새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토니상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상을 다수 거머쥔 수작이다.

2017년 공연 이후 송일국은 아내의 해외 연수로 1년 3개월간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 머물렀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가족과 부대낀 시간이 디테일한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고 말했다. 삶이 곧 연기를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말이다.

“2008년 결혼한 후 아내와 큰 소리로 싸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근데 1년을 부딪치며 사니 얘기가 달라지더라고요. 2년 전 공연 땐 베로니크와 싸우면서 소리치기 바빴다면, 지금은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됐죠. 극 중 언급된 장소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아이들(대한·민국·만세)을 현지 유치원에 보내면서 느낀 고충들도 있었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배역에 맞게 10㎏ 정도 살도 찌웠고요(웃음).”

송일국은 1998년 데뷔한 브라운관 베테랑이다. 하지만 연극 작품은 안중근과 그의 막내아들 안준생 1인 2역을 소화했던 ‘나는 너다’(2010) 이후 두 번째다. 데뷔 10년이 넘은 시점에 그를 연극이란 낯선 무대로 이끈 건 매너리즘이었다.

“겉멋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여러모로 염증을 느끼던 때였죠. 그때 마침 연극 제안이 들어왔어요. 극 내용을 보면서 외증조할아버지(김좌진) 생각도 나면서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관객을 직접 만났을 때의 희열도 느꼈어요. 배우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죠.”

그만큼 준비도 치열했다. 오후 10시쯤 아이들을 재우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 3시에 일어나 녹화한 연습 영상을 보며 목소리 톤 등을 점검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어머니(김을동)에게 연기를 배운 것도 연극을 시작하면서다.

“어머니가 유동근·전광렬 선배 등 프로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유명하세요. 매번 ‘너는 무슨 배짱이냐’ 화를 내셨는데, 연극 시작 후엔 절박함에 어머니를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어머니랑 새벽 4~5시까지 연구했었죠.”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삼둥이의 안부도 물었다. 송일국은 “세쌍둥이가 성격이 정말 다르다”며 “대한이는 요새 세 자릿수 암산을 하고, 민국이는 연극 대본을 보고 연기하는 데 필이 꽂혔다. 만세는 엔터테인먼트적 감각이 유별나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배우는 선택하기보단 선택받는 직업인 것 같아요. 연극도 다양하게 하고 싶고, 방송에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좋은 작품과 배역을 만나고 싶어요. 가족과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