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올드 패러다임에서 뉴 패러다임으로

입력 2019-02-19 00:01

지금 세계에는 두 개의 큰 바퀴가 돌고 있다. 하나는 ‘올드 패러다임’의 바퀴이며, 다른 하나는 ‘뉴 패러다임’의 바퀴다. 도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바퀴가 거세게 돌고 있다. 이미 그 바퀴 안에는 새로운 시대를 알아보고 새 시대의 질서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올드 패러다임의 바퀴 안에 살고 있다. 대부분 그 바퀴 밖으로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뉴 패러다임의 바퀴는 점점 더 빠르게 돌고 있다. 바퀴의 축은 분명히 뉴 패러다임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올드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은 뉴 패러다임의 바퀴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거나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뉴 패러다임의 바퀴는 더욱 거세게 돌아간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깨달은 올드 패러다임 속 사람 중에는 뉴 패러다임의 바퀴에 진입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거세게 돌고 있는 뉴 패러다임의 바퀴 바깥쪽을 기를 쓰고 붙잡는다. 뉴 패러다임의 바퀴 회전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많은 이들이 튕겨 나가지만 그들 중의 몇은 간신히 뉴 패러다임 바퀴 속에 들어가 이미 진입해 있는 뉴 패러다임의 사람들과 합류한다. 올드 패러다임에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뉴 패러다임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이들이 올드 패러다임과 뉴 패러다임을 연결하는 사람들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참된 주역이다.

뉴 패러다임의 시대에는 올드 패러다임의 시대에 가졌던 가치관과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시대엔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그 일들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늘 해왔던 식으로 일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뭔가 다른 차원의 생각과 방식이 필요하다.

산업계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를 비롯해 종교계에서도 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올드 패러다임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기존 관성에 따라 돌고 있던 것들이 계속 도는 느낌이다. 그것에 만족한다면 별문제 없지만 지금 대부분은 한국교회에 뭔가 다른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를 생각하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에는 ‘신선함’과 함께 ‘유쾌함’이 있었다. 올드 패러다임의 세계에서 뉴 패러다임을 제시했기에 사람들은 일상과 영혼의 답답함을 느낄 때면 교회를 찾았다.

올드 패러다임과 뉴 패러다임은 계속 순환한다. 오늘의 뉴 패러다임이 내일의 올드 패러다임이 된다. 뉴 패러다임의 상징이었던 한국교회는 어느덧 올드 패러다임의 산물이 돼버렸다. 그럼으로써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단어는 ‘매력’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과거와 같은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의 실상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영적인 뉴 패러다임의 시대’에 진입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뉴 패러다임의 시대에 사람들은 규모에 함몰되지 않는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능가할 수도 있는 시대이기에 크고 작고의 차이가 사라진다. 뉴 패러다임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진짜 기독교를 시도하기 위해 제도권적인 공동체를 떠날 수 있다. 올드 패러다임의 교회를 변혁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강하게 전개되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고 여겨질 때는 아무리 크고 안락하더라도 그곳을 떠나 과감히 새로운 공동체를 결성하려 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선교적 교회’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존 교회를 떠나는 목회자들이 나타나는 것도 영적인 뉴 패러다임에 진입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바퀴가 거세게 돌고 있다. ‘나는 올드 패러다임의 사람인가, 아니면 뉴 패러다임의 사람인가’를 심각히 질문해야 할 때다.

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