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불허했던 공정위, 이제와 승인하자니 ‘자기부정’ 곤혹

입력 2019-02-18 04:00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합병심사를 앞두고 ‘자기부정 속앓이’에 빠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적극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합병을 승인하려면 3년 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현재 CJ헬로) 합병을 불허했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이어 공정위가 세 번째로 박근혜정부 때 잘못 내린 결정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17일 공정위와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합병계약을 맺은 LG유플러스는 조만간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신고서가 접수되면 최대 120일 이내에 심사해야 한다. 아직 심사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승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불허 결정을 언급하며 “아쉽다. 다시 심사한다면 전향적인 자세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승인 여부를 따지지만, 현 정부 들어 주요 사건에서 김 위원장의 판단은 ‘1표 이상’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공정위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2016년 공정위가 불허 결정을 내렸을 때와 지금의 유료방송시장 상황이 대동소이한데도, 3년 전과 달리 승인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24.4%다. SK브로드밴드의 합병 신청 때 합산 시장점유율(26.0%)과 별 차이가 없다. 유료방송시장 1위인 KT의 시장점유율 역시 3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6년 공정위 불허 결정 논리를 이번 합병 심사에 그대로 적용하면 승인이 나오기 어렵다.

2016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 불허는 그동안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유료방송시장을 전국이 아닌 78개 권역으로 나눠 경쟁제한 여부를 따졌다. 그러면서 양사 합병에 따른 가격인상 압력은 전국 시장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성격이 상이한 아날로그TV 시장과 디지털TV 시장을 분리하지 않고 합쳐 CJ헬로비전의 시장지배력을 최대화하기도 했다. 2016년 합병 심사에 관여했던 한 공정위 관계자는 “최소한 ‘조건부 승인’은 났어야 할 사건이었다”면서 “사실상 합병을 불허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건 처리 절차도 매끄럽지 못했다. 공정위는 신고 접수 후 231일 만에 늑장 결론을 내면서 해당 기업의 반론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후 ‘청와대 외압설’은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조사에서 최씨가 주도한 K스포츠재단에 80억원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SK 측이 거부하자 합병 심사 결론이 뒤바뀌었다고 봤다. 김상조 위원장이 사과하고 재심을 결정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사건,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비슷한 사안인 셈이다. 다만 두 사건과 달리 공정위가 ‘과오’를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은 무산됐기 때문에 재심사는 무의미하다. 잘못을 인정하면 해당 기업 투자자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합병을 승인하자니 자기부정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불허하면 현 정부 기조와 맞지 않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