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역전세난이 현실화되면서 전세금 반환을 둘러싼 세입자와 집주인 간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주택 임대차 분쟁 조정을 신청하는 빈도도 확연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집주인이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제도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17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분쟁 조정은 총 2515건이었다. 이 가운데 71.6%인 1801건이 전세금 반환과 관련된 분쟁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조정 신청은 더 증가하고 있다. 1월 공단에는 총 260건의 조정 신청이 접수됐는데 전월 대비 8.3%, 전년 동월 대비 12.6% 증가했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주택 임대차와 관련한 분쟁을 합리적으로 심의 및 조정하며, 임차인과 임대인은 상호 합의한 조정 결정을 따라야 한다. 조정 결과에 집행력이 부여돼 불이행 시 소송 없이 경매 등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집주인이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거나 의사 통지를 하지 않을 경우 조정 신청은 자동 기각된다는 허점이 있다. 지난해 접수된 조정 신청 2515건 가운데 실제 조정이 이뤄진 것은 절반에 못 미치는 1125건에 불과했다. 조정 요건 미비 또는 세입자 취하를 제외하고도 집주인의 비협조로 기각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되찾기 위해 경매를 신청하는 빈도도 증가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세보증금과 관련한 경매 신청 건수는 2017년 108건에서 2018년 125건으로 15.7% 늘었다. 낙찰가가 채권청구액보다 낮은 것도 37건에 달했다. 전셋값이 집값을 넘어서는 이른바 ‘깡통전세’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깡통전세 문제가 아직까지는 지방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한다. 부동산 시장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주택 가격이 급락한 지방과 달리 서울, 수도권은 그간 급등한 가격 때문에 전셋값이 집값을 역전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통상 ‘역전세’는 전세 갱신이나 신규 세입자를 구할 때 직전 전세계약보다 보증금이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과 주택에 잡힌 대출의 합산보다 주택 매매가가 낮아지는 것을 말하며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큰 상황에서 전셋값이 폭등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매매가가 떨어지면 전세가가 올라가는 반비례 관계가 나타나게 마련인데 지금은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는 추세”라며 “공급 물량이 아직 풍부하고, 최근 몇 년간 전반적 가격 상승이 조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방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지만 서울지역의 전세 약세는 공급량 과잉에 의한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수요에 따라 전셋값 하락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집값이 급등 전 수준으로 조정을 받을 경우 수도권까지 깡통전세 대란의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전세계약과 함께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이나 전세권 설정 등 자구책을 준비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거래가 끊긴 매매와 달리 전세는 꾸준히 수요가 있다”면서도 “보증금 분쟁이 이슈가 되면서 전세계약을 할 때 보증보험에 대해 문의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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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싫다면 세입자 속수무책, ‘전세금 분쟁 조정’ 절반 자동기각
입력 2019-02-18 04:00 수정 2019-02-18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