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전향적 대북 협상 뒤엔 ‘민간 싱크탱크’ 2곳 자문 있었다

입력 2019-02-15 04:00
북핵 실무협상 미국 측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사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민간 싱크탱크 두 곳에 지속적으로 자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싱크탱크의 분석이 실제로 비건 대표의 대북 접근법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북핵 문제를 범죄시하며 깐깐한 비핵화 검증을 중시하던 과거 미국 행정부와 결이 다른 전향적 아이디어를 내온 기관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는 12일(현지시간) 칼럼에서 “비건 대표는 스탠퍼드대와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전문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집해왔다”면서 “비건 대표가 이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두 기관이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배경 현안 일부를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비건 대표의 기류 변화가 두 전문가 집단의 영향에 따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카네기팀은 핵 비확산 전문가인 조지 퍼코비치와 토비 달튼, 이스라엘 원자력위원회 정책 담당 부국장을 지낸 애리얼 르바이트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정보 수집을 위해 중국을 포함한 외국 전문가들과도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카네기팀은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와 기록 생성·관리 노하우 부재 때문에 비핵화를 완벽하게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 역시 자신들의 핵 능력을 외부 세계에 노출하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네기팀은 ‘확률론적 검증(probabilistic verification)’을 제안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활동 중 일부만 감시 대상에 넣더라도 실질적으로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 전반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네기팀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활동 열 가지를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 가운데 세 가지만 확실히 검증 가능하게 묶어놔도 충분하다”면서 “이 경우 북한이 나머지 일곱 가지 분야에서 불법 활동을 몰래 저지르려 해도 어떻게든 들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스탠퍼드팀은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인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연구원 엘리엇 서빈,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이 주도하고 있다. 스탠퍼드팀은 북한이 확실한 체제안전 보장을 얻기 전까지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구두 약속이나 서면 합의로는 충분치 않으며 북·미가 장기간 독립을 유지한 채 공존하는 신뢰 형성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10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스탠퍼드팀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북핵 위협 감소 조치를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 조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탠퍼드팀은 북한을 회유할 ‘당근’으로서 민간용 원자력 발전과 상업용 우주발사체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고도 제안한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와 함께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 우주의 평화적 이용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민간용 원전과 상업용 발사체 역시 핵·미사일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