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근절 ‘의지’ 절실… “여가부에 조사권 부여하자”

입력 2019-02-17 17:37
전혜숙 위원장은 여성 대상 성폭력 근절에 대해 “대책이 아닌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현 쿠키뉴스 기자

“여성가족부가 제대로 일을 하게 하려면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혜숙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의 말이다.

국회에서 전혜숙 위원장을 만나 미투 운동이 바꾼 지난 1년을 되짚어봤다. 지난해 7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하 여가위) 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 이미 우리사회 각계로 미투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기존에 각종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향해 ‘자기 관리를 못했다’, ‘개인의 문제다’ 등의 2차 가해가 자행됐던 것에서 대중은 가해자의 엄벌과 피해자의 보호를 원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전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본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우선 ‘법’이 바뀌어야만 했다.

그가 여가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했을 때 여야는 대치국면이었다. 여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여야가 뜻을 모아야 한다고 여가위원들을 설득했다. 그해 9월 정기국회가 열리고, 열흘 만에 상임위에서 법안 23건이 통과됐다.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벽도 높았다. 전 위원장은 “국회조차 성인지 및 젠더 감수성이 높지 않음을 실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과 설득 끝에 나온 것이 ‘데이트폭력·가정폭력에 대한 특별법’. 그 스스로도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공무원 인재개발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여성가족부의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전 위원장의 말을 빌자면 여가부 자체적으로 권한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 올해 1조를 넘어선 예산이 통과되긴 했지만 타 부처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고, 타부처간의 장벽도 높았다. 전 위원장이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여성건의부”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지난해 11월 16일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당정협의를 진행했고, 올해 1월 24일에도 체육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당정협의가 일사천리로 열렸다. 관계부처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협조를 촉구한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전 위원장은 “여가부처럼 작은 부처가 큰 부처에 건의만 해서 누가 듣겠느냐고 말했고, 이에 대통령도 수긍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정책 사업에는 예산이 따르기 마련이고, 배정된 예산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생긴다는 너무 당연한 작동 원리가 여가부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특히 지난 국정감사 당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방문했던 일을 전 위원장은 잊지 못한다. 불과 10여명의 직원들이 수만 개의 불법 동영상을 직접 확인·신고·삭제 요청을 하고 있는 열악한 업무 환경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당정협의회에서 전 위원장은 과기부와 방통위의 협조를 거듭 촉구했고, 이후 삭제 지원인력을 포함한 디지털성폭력 피해지원 인력은 26명으로 늘어났다.

유의미한 성과가 이어졌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예술인 복지법 ▲성범죄의 형량과 벌금을 늘리는 ‘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양성평등기본법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등이 속속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은 강서구 주차장 전처 살인사건을 위시한 가정폭력에 대해 “무수히 많은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이 되풀이 됐다”며 “가정폭력은 가장 악질적인 사회 폭력으로, 법률 재·개정 등 여러 대안책 마련을 위해 적극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성폭력 근절 방안에 대해서도 전 위원장은 “‘대책’이 아닌,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여가부가 조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성차별·성희롱의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양균 쿠키뉴스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