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승태 “파견 법관, 헌재 진행중인 민감한 사건 정보 잘 전달해야”

입력 2019-02-13 04:02
양승태 전 대법원장. 권현구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들이 헌재에서 진행 중인 민감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대법원에 잘 전달해야 한다”며 헌재 기밀 유출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각도로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이 같은 지시가 이뤄졌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2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에게 “‘헌법재판관들이 위헌 판단에 신중해질 수 있도록 헌재 파견 법관들이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며 “파견 법관들이 헌재가 진행하는 민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대법원에 잘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아울러 이 전 실장에게 헌재 관련 정보 확보 및 대응책 마련 등 헌재 업무를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그 즈음 이 전 실장에게 “헌재 관련, 파견 법관을 활용하되 보안을 위해 일부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는 법관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하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실장은 이에 따라 헌재 파견 법관들에게 인사 평정권이 행정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보 유출을 종용했다.

기밀 유출 지시는 당시 헌재의 위상 강화를 우려했던 양 전 대법원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결정 등 국민적 관심이 있던 사건을 헌재에서 다뤘던 데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헌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파견 법관들은 그 후 2년간 헌재 내부 정보 325건을 수집해 이 전 실장 등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지시가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장에 이를 적시했다.

박 전 처장이 고등학교·대학교 후배 A씨로부터 재판 관련 청탁을 받은 구체적인 정황도 공소장을 통해 새로 드러났다. 한 투자자문업체 대표였던 A씨는 법인세 28억여원을 내지 않은 혐의(조세 포탈)로 2011년 8월 기소됐다. A씨는 이 사건이 1년 뒤 대법원에 접수되자 박 전 처장에게 “제 사건이 형님네 재판부로 배당이 되면 안 돼요?”라고 말하며 직접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사건은 이후 박 전 처장이 속한 대법원 1부에 배당됐다. 주심이었던 고영한 전 대법관은 2013년 11월 1·2심 선고와 같이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박 전 처장은 이 사건 1심 진행 중 대법관실로 자신을 직접 찾아온 A씨에게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 같으니 대응을 잘해야 한다. 재판은 증거와 논리의 싸움이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박 전 처장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법원 사건검색시스템에 접속해 A씨의 1심 재판 진행상황을 17회 무단 열람했다. 박 전 처장은 이 사건 외에도 A씨로부터 다른 소송건에 대한 청탁을 받고 “그래 알아보자”고 하는 등 협조를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기소와 관련 “심려가 크실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다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아울러 검찰 최종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법관 징계와 재판업무 배제 등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