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임금구조의 근원 ‘통상임금’이 손대기 힘든 ‘폭탄’으로

입력 2019-02-13 04:01

한국 근로자의 월급명세서는 기형적이다. 고정적인 기본급이 적은 대신 언제든 없앨 수 있는 각종 수당이 붙어 전체 임금을 끌어올린다. 때문에 임금, 특히 수당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통상임금 분쟁이다. 초과근로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점인 통상임금에 들어가는 임금 항목 범위를 줄여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기업, 범위를 넓히려는 노조는 늘 평행선을 달린다. 정부는 법원과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으며 일관성 없는 목소리를 낸다.

왜곡된 임금구조라는 ‘뿌리’는 둔 채 ‘가지’만 치다보니 복잡한 임금체계, 임금 분쟁을 잉태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인 통상임금이 있다.

통상임금은 어쩌다가 ‘폭탄’이 됐을까. 1953년 처음으로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일본의 노동기준법을 참고했다. 일본은 직무급 대신 연공급과 노동시간을 중심에 두는 체제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노동시간의 대가로 정의했다. 이어 ‘초과근로수당과 연차휴가유급수당 산정은 임금이 아닌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한다’는 생소한 문구를 넣었다. 상세 설명조차 없었다. 이렇게 일본의 노동기준법에도 없는 새로운 임금, 통상임금이 출현했다.

임금과 대비되는 동시에 구체적 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인 통상임금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실체 없는 임금이었다. 정부는 82년에서야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 급여’를 통상임금이라고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마저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임금이 곧 통상임금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라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전면 개정한 96년에도 통상임금 개념이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고위직을 지낸 임무송 한국산업기술대 석좌교수는 “당시만 해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임금 항목은 명절 떡값 정도였다”며 “임금체계가 복잡하지 않았던 탓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때 통상임금이 사라지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조차 불확실한 통상임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폭탄으로 성장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사는 임금협상 때마다 기본급 인상을 최소화하는 대신 각종 수당을 만드는 식의 타협을 반복했다. 기업은 고정적으로 나가는데다 4대 보험료 부과의 근거가 되는 기본급을 올리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임금을 조금이라도 높여야 하는 노조는 새로운 수당을 신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하면서 임금구조는 급격하게 왜곡됐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당은 결국 ‘통상임금 갈등’을 촉발했다. 단적인 사례가 대법원의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통상임금 소송 판결이다. 대법원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 급여’라는 규정을 봤을 때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는 고용부 행정해석과 정반대 의견이 나온 것이다. 이를 도화선으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통상임금이 분란과 분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통상임금이 상당한 부작용을 노출하고 있는데도 정부나 정치권은 근본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다.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38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통상임금 자체를 근로기준법에서 삭제하겠다는 법안은 없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임금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매년 금액이 오르는 호봉제 대신 직무에 기반한 직무급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임금 총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당을 한꺼번에 줄이기엔 부담이 크다. 정부 차원에서 제도를 고치는 게 답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직무급의 기반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대대적 작업이 필요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달성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