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극우 제동 걸 컨트롤타워 없어 ‘5·18 역풍’ 자초

입력 2019-02-12 04:00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회원(오른쪽 아래)이 11일 국회에서 ‘5·18 망언’에 항의하려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까지 왔다가 제지당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망언을 한 한국당 의원들이 제명될 때까지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자유한국당이 ‘5·18민주화운동 폄훼’ 후폭풍에 휩쓸려들어가고 있다. 설 연휴 이후 대여 공세를 높이겠다는 계획은 크게 어그러졌으며, 거센 비난 여론 속에 정치적으로도 고립된 처지가 됐다. 한국당 지도부는 뒤늦게 파장 수습에 부심하고 있지만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들에 대한 실질적 조치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당 전체가 망언의 진창에 빠지고 있다. 내부 극우 강경파의 목소리를 제어할 리더십과 공당으로서의 필터링 시스템 부재가 부른 화(禍)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지금 한국당은 그야말로 중환자실 환자가 산소호흡기 떼고 일반병실로 옮긴 정도”라며 “그런데 우리 스스로 경계심이 약화되고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의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러 어려운 시점에 당에 흠을 주는 행위는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문제의 시발점인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주최하고 “폭동” “괴물집단” 등 발언을 한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을 겨냥한 말이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들에 대한 징계 요구에 대해서는 “그건 우리 당내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또 “보수정당 안에 여러 가지 스펙트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비난이 확산되자 오후 들어 공청회 개최 경위 및 발언 내용에 대한 진상 파악을 지시했다.

5·18 모독 발언과 당을 분리시키되 완전히 배척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지난 9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며 시비의 틈을 남겼다. 이는 현재의 오합지졸 같은 한국당 상황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선 당내 극우 강경파의 돌출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전당대회 국면과 맞물려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편향적 포퓰리즘이 고개를 드는 조짐이 나타나는데도 이를 사전에 걸러내거나 사후에라도 수습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차원의 통제가 느슨하다보니 망언 당사자들은 여전히 5·18 유공자 명단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김순례 의원은 유일하게 사과 성명을 내면서 “제가 얘기한 부분은 오로지 5·18 유공자 선정에서 허위로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우경화 현상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나 원내대표가 ‘복당파’ 대표인 김학용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에 오른 데 이어 친박(박근혜) 색깔이 강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유력 당권주자로 떠오르면서 이런 기류는 보다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한국당은 지난달 극우논객 지만원씨의 5·18 진상규명조사위 위원 추천 논란 때도 조속히 매듭짓지 못한 채 원내대표 집 앞까지 찾아와 막말을 뱉는 지씨에게 끌려가는 촌극을 빚었다. 5·18 폄훼 논란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이런 흐름이 낳은 ‘미필적 고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 장제원 의원은 “외연 확대도 모자랄 판에 역사 퇴행적 급진 우경화는 보수 결집은커녕 보수 환멸을 조장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최근 한국당 지지율이 일부 올라간 것은 문재인정부 비판에 대한 반사효과인데도 과잉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당은 이번 파장으로 찾아온 기회를 못 살리고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호일 심우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