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록 A4 용지 20만 페이지, 복사에만 2주 걸려

입력 2019-02-12 04:03
사진=뉴시스
A4용지 20만 페이지.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본격 착수한 뒤 작성한 수사 기록의 분량이다.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은 기록 복사에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복사 비용에만 수천만원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공소장은 296쪽으로 임 전 차장(243쪽)보다 40쪽가량 많다. 추가 기소 여부에 따라 이 사건 변호인들이 접할 수사기록 분량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록 분량에서 나타났듯이 이 수사는 검찰이 ‘총력’을 투입한 수사였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했고 3개월 만에 특수 2·3·4부를 추가 투입했다. 238일 동안 전·현직 법원 관계자 수백명이 검찰에 소환됐다. 수사 검사 규모는 50명이 넘었다고 한다. 2013년 대검 중앙수사부 해체 이후 단일 사건 수사팀으로는 최대 규모다.

검찰은 7개월이 넘는 수사기간 물증 확보에 주력했다. 수사에 착수한 시점은 ‘법관사찰 의혹’이 불거진 지 1년4개월이 지난 때였다. 사건 관계자들이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사 초기부터 검찰은 벽에 부딪혔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하드디스크는 이미 법원에 의해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자료 삭제) 처리돼 있었다. 법원은 내부 작성 문건의 임의제출에는 동의했지만 법관 인사 자료,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 내밀한 자료는 제출을 거부했다.

압수수색영장은 열에 아홉꼴로 기각됐다. 검찰은 수사 착수 직후인 지난해 7월 양 전 대법원장, 박 전 처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행정처와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역시 무더기 기각됐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커졌다.

법원에 대한 강제수사가 어려워지자 검찰은 지난해 8월 외교부를 전격 압수수색해 수사의 활로를 찾았다. 외교부가 청와대, 행정처와 ‘강제징용 소송’ 처리 방향을 논의한 문건 등 다량의 물증을 확보했다. 2개월 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 전 차장이 구속됐다.

다만 지난해 12월 박 전 처장과 고영한 전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 수사는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검찰은 두 전직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보다 양 전 대법원장을 먼저 소환하는 ‘강수’를 택했다.

검찰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배경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문’이 묻은 물증이 있었다. 전범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와 그가 독대한 정황이 담긴 문건, 직접 결재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 같은 물증을 바탕으로 지난달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첫 소환했고 13일 뒤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