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곪아온 임금체계 수술 미루다 붕괴 위기

입력 2019-02-12 04:01

66년 된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균열이 시작됐다. 1953년 노동자의 임금과 휴식 등의 기준을 법으로 만든 뒤 현장에서 쌓인 뒤틀림이 가져온 결과다. 호봉제(연공급) 속에서 장시간 근무를 시켜야 하는 기업과 정부는 임금 총액을 ‘기본급 약 50%+각종 수당 약 50%’로 쪼개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었다. 수면 아래에서 곪던 누더기 임금은 지난해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전방위에서 부작용을 노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디지털 기술 발전도 낡은 임금구조·노동시장에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기존의 근로기준은 전통적 ‘사용자-근로자’ 개념을 뛰어넘는 ‘플랫폼 노동’(애플리케이션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 등의 출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는 연공급에 뿌리를 둔다. 기업은 이에 기본급 비중 축소로 대응했다. 매년 올려줘야 하는 기본급을 임금 총액의 절반가량으로 낮췄다. 대신 임의로 만들었다 없앨 수 있고, 매년 인상해줄 필요도 없는 각종 수당을 만들었다. 초과근무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시급을 낮추기 위해 더 많은 수당과 상여금도 만들었다. 정기적·일률적·고정성이 없는 수당과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누더기 임금이다. 월급명세서는 ‘기본급+내용을 알 수 없는 수당·상여금’으로 채워졌다. 11일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 임금 구성은 기본급 57.3%, 수당·상여금 42.7%다.

기형적 임금 구조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불씨’를 만나면서 폭발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최저임금법 위반을 따지는 계산식에 각종 수당과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근로기준을 처음 만들 때 장시간 근로를 막으려고 도입한 주휴수당까지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올해도 ‘임금의 역습’은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온 현상이다. 일선 기업의 임금체계는 더 꼬이고 있다. 정부는 임금체계 정상화를 외치지만 현장에선 건건이 나오는 대책을 피해 더 복잡한 월급명세서를 낳고 있다.

또한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디지털 기술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우버로 대표되는 디지털 긱 이코노미(Gig Economy·비정규 프리랜서 근로)가 그것이다. 긱 이코노미의 플랫폼 노동은 특정한 프로젝트 또는 기간이 정해진 단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동력이 유연하게 공급된다.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용자, 근로자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전통적 고용주, 노동자를 넘어서는 것이다. 기존 법은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프로젝트성 노동정책”이라며 “임금체계 정비 등이 시급한 상황에서 구조적인 노동시장 선진화 개혁이 없다는 결함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