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신종 액상 전자담배가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으며 이를 규제하기 위해 담배사업법에 규정된 담배의 정의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 금연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실무기관의 책임자 입을 통해서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이성규(사진)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11일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들이 담배 식물의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 혹은 화학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면서 이들 제품이 담배가 아닌 상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담배의 정의를 현행 ‘담뱃잎 사용’이 아닌, 담배 식물 전체로 하고 니코틴이라는 단어도 정의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담배사업법 2조는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형태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1988년 법 제정 이후 담배의 정의는 지금껏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규정되지 않는 액상 전자담배 제품이 전국의 전자담배판매점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일본 회사의 ‘비엔토’ 제품이 ‘줄기·합성 니코틴’을 모토로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또 미국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있는 합성 니코틴 제품 ‘쥴’도 오는 4월쯤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가금연지원센터의 모니터링에 따르면 현재 줄기 추출 니코틴이나 합성 니코틴 사용을 내세워 국내에서 판매 중인 브랜드는 30~4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명칭도 ‘프라임쥬스’ ‘퀴닉쥬스’ ‘베라쥬스’ ‘홀릭’ ‘리쿠아’ 등으로, 다양한 가향(佳香) 물질을 첨가해 마치 건강음료를 연상케 한다. 2015년 담뱃값 인상 당시에는 합성 니코틴 제품이 많이 나왔으나 최근엔 줄기 니코틴 제품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들 제품은 분명 흡연을 위한 것이지만 현행법상 담배에 가해지는 모든 규제를 피해가고 있다. 담배 제품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에도 신고하지 않아도 되며, 니코틴 2% 미만인 경우 화학물질 관리부처인 환경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판매할 수 있다. 상당수 제품에서 식품첨가물이나 가향물질을 넣어 팔고 있다. 이 센터장은 “담배로 관리가 안 되다 보니 국내 유통 규모 등 실태 파악이 안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제품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 건강 위해성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담배에 붙는 제세·부담금(개별소비세, 건강증진부담금 등) 부과 대상도 아니다. 한마디로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인 것이다. 아울러 담배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를 붙이지 않아도 단속이나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실제 많은 제품이 식품 첨가물을 넣었다는 등 오도(誤導)문구를 자유롭게 넣어 광고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금연구역인 카페 등에서 흡연한다는 손님 신고를 받고 금연 지도원이 단속을 나가도 줄기 니코틴 제품임을 내세워 과태료 부과를 못하고 되돌아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기재부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규제 밖이어서 어쩌지 못하고 있다. 2016년 국회에는 ‘합성 니코틴’을 담배 원료에 포함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센터장은 “당시는 합성 니코틴 제품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줄기 니코틴 제품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수정·보완하는 등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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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액상 전자담배 우후죽순… ‘담배 정의’ 바꿔야”
입력 2019-02-12 04:03 수정 2019-02-12 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