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굴레 벗어야 보수 부활”… 오세훈 ‘朴 지우기’로 승부수

입력 2019-02-08 04:01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은 한국당이 보수우파에만 기대지 말고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성호 기자

오세훈(58) 전 서울시장이 ‘탈(脫)박근혜’를 기치로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에 나섰다. 보수 향수를 자극하는 다른 후보들과는 차별화하는 ‘박근혜 지우기’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향후 예상되는 보수진영 재편 상황에서 개혁보수 주자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오 전 시장은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2·27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첫 일성은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을 더는 부정하지 말자. ‘정치인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중환자로 만든 문재인정부로부터 정권을 탈환하려면 내년 총선 승리가 필수적이며, 그 승부처는 수도권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를 위해 한국당에 덫 씌워진 ‘친박 정당’이라는 굴레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전 시장은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할 수 있어야 보수 정치가 부활할 수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일가가 뇌물수수 의혹을 받자 스스로 ‘나를 버리라’고 했다. 그런 결기가 없었다면 폐족으로 불렸던 그들이 지금 집권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냐, 아니냐’의 프레임으로 걸어들어가는 순간 총선은 참패”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우파만의 지지를 넘어 침묵하고 있는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한국당이 개혁보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노선과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오 전 시장은 당권 경쟁자인 황교안 전 총리와 홍준표 전 대표를 ‘불안한 후보들’로 규정했다. “한 사람은 기회를 잡고도 처참한 패배를 자초했으며, 다른 분은 전당대회 직전 당에 들어와 조금도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출마선언문에서 드러낸 중도 기조는 한국당 입당 초반 ‘태극기 부대 수용’ 등 전통적 당 지지층을 겨냥한 행보를 보였던 것과 대비된다. 유력 당권주자가 된 황 전 총리와 보수 농도 경쟁을 벌이기보다, 비박계 대표 주자로 대척점에 서는 것이 승산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남권 책임당원이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당 구조에서 이런 승부수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한 당직자는 “오 전 시장의 ‘탈박근혜 선언’은 당 정서상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멋지게 지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탄핵을 부정하지 않는 합리적인 보수와 중도 세력까지 외연 확장을 꾀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향후 야권 개편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 전 시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보수우파에서 오른쪽 끝에 황 전 총리가 있다면 맨 왼쪽, 중도층 가까운 곳에 제가 위치한다.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에 있는 분들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