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상위 학부모들의 입시전쟁을 다룬 ‘SKY 캐슬’(JTBC)의 성공엔 배우 염정아와 김서형이 있었다. 드라마 종영을 맞아 극의 중심축이었던 두 배우를 만났다. ‘SKY 캐슬’은 이들의 노력이 겹겹이 쌓여 세워진 높은 성처럼 보였다.
▒ 1등 학부모 한서진 역 염정아
“너무 걱정돼서 잠꼬대를 했고 꿈에선 계속 NG를 내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 ‘얼굴 근육까지 연기한다’는 찬사를 들은 염정아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유독 어려웠어요. 감정신이 너무 걱정돼서 잠꼬대를 했어요. 분명 대본을 다 외웠는데 꿈에선 계속 NG를 내더라고요(웃음).”
‘아갈머리’ ‘쓰앵님(선생님)’ 등 유행어를 탄생시킨 염정아는 한서진을 마치 현실 속 인물인 양 입체감 있게 표현해냈다.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행복하고 감사한 요즘”이라며 감격했다. 연기하면서 느낀 고충도 함께 털어놨다.
“한서진은 정말 많은 인물들과 부딪치는데, 매번 상황과 감정이 달랐어요. 대본에 형광펜으로 줄만 치는 편인데, 이번엔 이전 신의 감정과 행동을 꼼꼼히 적어놓고 연기해야 했죠. 스케줄이 빡빡해 하루에 17벌씩 옷을 갈아입는 날도 있었고요.”
한서진을 표현하기 위한 스타일링에도 신경을 썼다. ‘그레이스 켈리보다 진주 목걸이가 더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시놉시스를 보며 그를 다룬 영화를 보며 연구했다고. 기억에 남는 대사로는 역시 ‘아갈머리’를 꼽았다.
“사전을 찾아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웃음). 굉장히 교양 있고, 얌전한 척하는 한서진이 이 대사를 하면 너무 신나겠다 생각했죠. 촬영할 때도 즐거웠어요.”
드라마 결말 논란에도 의견을 보탰다. 욕망이 불러온 파국을 보여주던 드라마는 최종회에서 갑작스레 모든 인물들이 개과천선하며 호불호가 갈렸다.
“시청자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요. 개인적으로 비극적 결말은 어땠을까 생각도 해요. 작가님과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방향대로 간 건데, 그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작진에 대한 신뢰도 듬뿍 드러냈다. “조현탁 감독님은 모든 연기자들을 배려하면서 소통해주셨어요. 유현미 작가님은 완벽한 대본을 일찍 주셔서 공부할 시간이 많았어요. 변명거리가 없었죠(웃음). 카메라 감독님은 미세한 떨림까지 세심하게 잡아주셨고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MBC·1991)으로 데뷔한 염정아는 정형외과 의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초등학생 남매를 두고 있다. 그는 “엄마가 되고 차분해졌다.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올해로 데뷔 29년차이지만, 여전히 변신을 꿈꾼다고.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행복해서 연기를 해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만, 다음엔 한서진과 완전히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코미디도 좋고요.”
▒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 김서형
“정신과 상담 받아야 할 거라며 출연을 두 차례나 거절했었죠”
김서형은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가련한 다면적 인물로 소화해내며 극의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단순한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항상 인물에 대한 연민을 갖고 연기를 해왔어요. ‘아내의 유혹’(SBS·2008)의 신애리도 그런 시선으로 연기하지 않았다면 질타만 받는 악역으로 끝났지 않았을까 싶어요.”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형은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며 한서진과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했던 김주영과는 달리 조심스러웠고, 또 발랄했다. 그는 “출연을 두 차례 거절했었다”고 털어놨다.
“악역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이 싫었어요. 신애리를 연기하면서 정신적으로 아프고, 힘에 부쳤던 트라우마도 있었고요. 처음엔 소속사에 ‘자신이 없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대표님이 자기 촉을 믿어보라고 설득했는데, 대표님이 맞았네요(웃음).”
김주영이란 인물 뒤엔 그의 꼼꼼한 분석과 준비가 있었다. 의상과 행동에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다. 온통 검은 의상과 캐슬 엄마들과 비슷한 옷 두 가지의 콘셉트를 준비했다가 차별화를 위해 전자를 택했다.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걸쳐보니 감이 오더라고요. 로봇 같겠구나 했어요. 모퉁이에서 직각으로 몸을 틀고, 어깨나 가방도 흔들리지 않게 걸었죠. 올백으로 머리를 계속 넘기고 있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아파서 화가 날 정도였죠(웃음).”
김서형에게 김주영은 “머리 꼭대기에 있는 여자”였다. 머릿속으로 모든 걸 구상하며 캐슬 주민들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인 탓에 꽁꽁 묶인 채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고.
“순간순간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많았는데, 대본이 다 안 나온 상황에서 감정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허투루 한 건 아니었다고 느꼈죠.”
1994년 KBS 공채로 데뷔한 김서형은 독보적 악역이었던 신애리로 기억되지만 드라마 ‘기황후’(MBC·2013) ‘어셈블리’(KBS2·2015) 등 많은 작품에서 내공을 쌓아왔다. 그는 이번 작품을 두고 “비슷한 악역도 ‘김서형이 하면 새롭다’는 느낌을 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
“제2의 전성기라기보단, 어떤 역할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끝내니 다음 작품 고민이 제일 먼저 드네요(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인터뷰] 최고의 흥행작 ‘SKY 캐슬’ 두 주인공 염정아·김서형
입력 2019-02-07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