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마두로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해외원조 전면거부

입력 2019-02-08 04:04
주황색 유조 탱크와 파란색 선박 컨테이너 2개가 6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쿠쿠타와 베네수엘라 우레나를 연결하는 티엔디타스 다리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티엔디타스 다리는 국제사회가 베네수엘라에 지원하는 구호물자를 운반하는 통로 중 한 곳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구호물자 반입 거부 차원에서 컨테이너 등으로 도로를 막을 것을 지시했다. AP뉴시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외 원조를 전면 거부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서방 국가들이 인도적 지원을 빌미로 군사 개입이나 내정간섭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경수비대는 콜롬비아 쿠쿠타와 베네수엘라 우레나를 잇는 티엔디타스 다리에 유조 탱크와 선박 컨테이너를 동원해 구호물자 반입을 막았다고 AP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리 위에는 도로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는 카메라도 설치됐다.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 카리브해의 섬, 쿠쿠타를 통해 구호물자를 전달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했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해외 원조가 자신을 퇴진시키기 위한 서방 국가들의 노림수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며 “남미 국가에 인도주의적 위기란 없다”고 군부대 연설에서 말했다. 또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쇼”라며 “제국주의 국가들이 구호물자로 보낸 것은 전부 폭탄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를 파괴했다”고 강조했다. 메리언 모랄레스 옥스퍼드대 정치학 교수는 “해외 원조는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군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종의 ‘트로이 목마’”라고 설명했다.

과이도 의장은 베네수엘라의 현 상황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군부에 해외 원조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당신의 가족들은 분명히 구호물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앞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과이도 의장의 지원 요청에 각각 2000만 달러, 500만 유로의 원조를 약속했다.

미국도 마두로 정권의 해외 원조 거부 행태를 비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티엔디타스 다리 봉쇄 사진과 함께 “미국 등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를 도우려고 노력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인도적 지원을 막고 있다”며 “굶주리는 국민들이 도움을 받게 하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경제 파탄에 빠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심각한 식량·의약품 부족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카라카스의 한 슬럼가에는 꼬박 4개월간 물이 공급되지 않았고, 주민들은 교회의 무료 급식에 의존하고 있다고 CBS방송은 전했다. 당뇨병을 치료할 인슐린을 구하지 못해 오른쪽 다리와 왼쪽 발가락 2개를 잃은 80대 여성의 사연도 소개됐다. 식량 부족을 이유로 고국을 떠난 베네수엘라 국민은 30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국민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의약품 지원을 거부한 그는 흰색 실험복을 입고 국영방송에 출연해 베네수엘라의 의료 시스템을 치켜세웠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혁명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이도 의장이 이끄는 과도정부는 미 정부 관료들과 오는 14일 워싱턴에서 베네수엘라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