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2차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못 박고 합의문 작성을 위한 실무회담에 들어갔다. 실무회담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 발표한 것은 양쪽 모두 배수진을 쳤다는 의미다. 북·미는 정상회담까지 남은 3주간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맞교환 로드맵을 짜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6일 오전 오산 미군기지를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따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건 대표는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주스페인 북한대사를 만나 비핵화 및 상응조치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워싱턴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상견례를 한 두 사람이 정식회담을 한 것은 처음이다.
북·미가 실무협상을 판문점이 아닌 평양에서 개최한 것은 양쪽이 그동안 물밑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의제와 합의 문구에 대략적인 의견 접근을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협상은 협상 내용이 실시간으로 상부에 보고되고 피드백도 즉각 반영돼 협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건 대표의 평양 체류 일정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협상 진전에 따라 1박2일 또는 2박3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비건 대표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따로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 또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일 방한한 비건 대표는 청와대와 외교부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방북길에 올랐다.
비건 대표와 김 전 대사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선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연결시키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이미 폐쇄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에 대한 전문가 사찰·검증, 영변 핵시설 폐기, 영변 이외 시설에 있는 플루토늄 및 우라늄 폐기 순으로 비핵화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계마다 미국이 어떤 조치를 내놓고 매칭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미국은 인적·문화 교류를 시작으로 부분적 제재 완화,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 사안이 북·미 간 의제로 직접 다뤄지지는 않겠지만 비핵화 진전에 따라 재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31일 미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의 포괄적 핵 신고를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미루며 북한이 요구해 온 단계적·동시적 접근에 호응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이는 영변 이외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는 비핵화 조치와 함께 향후 로드맵을 만드는 데도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한 뒤 이를 동력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구상이다. 이는 지난해 6·12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북·미 관계 개선,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의 내용과 시기를 구체화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 추진을 적극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상회담 의전·경호 협의는 의제 협상과 별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선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권지혜 최승욱 기자 jhk@kmib.co.kr
회담 날짜·장소 못박고… 北·美, 합의문 도출 배수진
입력 2019-02-0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