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 편에 있어줄,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밤, 서울 중구 서머셋팰리스호텔에서 만난 킴벌리 핸슨(52)과 줄리 듀발(56)은 길었던 여정에 약간 지쳐보였다. 미국에서부터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터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한인 입양인 출신으로 미국에 사는 두 사람이 고향 땅에 돌아온 건 이른바 ‘시설퇴소청소년’, 즉 성인이 되어 보육원 등 아동보호시설을 나온 청소년을 돕기 위해서다. 국내법상 아동복지시설에 사는 청소년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기간이 종료되기에 퇴소해 독립한 채로 살아야 한다. 비슷한 또래가 각자 가정의 지원 속에서 대학 갈 생각에 들떠 있을 시기, 이들은 사회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셈이다.
같은 입양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10년 넘게 친분을 쌓아온 둘은 2년 전 ‘러브 비욘드 디 올퍼니지(Love Beyond the Orphanage)’라는 비영리 공익단체를 만들어 이 같은 처지의 청소년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벌여왔다.
둘의 행동에는 청소년 시절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퇴소한 뒤 갖은 고난을 겪었던 듀발씨의 경험이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그는 어릴 적 고등학생 신분으로 퇴소한 뒤 여러 가정을 거치며 보수도 대부분 받지 못한 채 식모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당시 ‘고아라서 채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좌절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듀발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성인 신분으로 후원자 가정에 입양됐다. 듀발씨는 “누군가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둘은 이번 설 연휴를 포함해 지난 2년간 명절마다 한국에 들러 시설퇴소청소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조언을 해주는 등 관계를 쌓았다. 두 사람은 최근 홀트아동복지회에 그간 모은 15만 달러(약 1억7000만원)를 3년에 걸쳐 후원하기로 했다. 이 돈은 홀트아동복지회가 지난해 10월부터 현대백화점사회복지재단의 도움으로 추진해온 ‘파랑새, 꿈을 향한 날갯짓(파랑새, 꿈날)’ 프로그램에 쓰인다.
글·사진=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시설퇴소 청소년 도와줄 누군가가 되고 싶다”
입력 2019-02-06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