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지정 생존자’는 서열 15위 페리 에너지 장관

입력 2019-02-07 04:00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열리는 날은 의회 하원회의장에 입법·행정·사법 3부의 고위인사들이 총출동한다. 하원의장이 양원 합동회의에 대통령을 초대하는 형식인 만큼 각료들도 거의 예외없이 참석한다.

하지만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 지명된 장관은 예외다.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는 대통령 유고 시 권력 승계 15위인 릭 페리(사진) 에너지부 장관이 지정 생존자였다. 페리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할 때 비밀장소에서 대기했다.

미 ABC방송에서도 드라마화돼 유명해진 지정 생존자는 대통령의 취임식이나 의회 국정연설 등 공식 행사에서 테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해 대통령과 부통령, 하원의장, 각료 등이 줄줄이 변을 당할 경우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인사를 말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 싶지만 2010년 폴란드에서 비행기 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요인 87명이 사망하면서 일대 혼란이 발생한 바 있다.

‘생존자’를 지정하는 실무는 미 대통령 수석보좌관이 맡는다. 대상자가 누구인지는 행사 직전까지 비밀에 부친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전 생존자로 지정된 페리 장관은 이후 워싱턴 외곽의 모처로 이동해 비밀 경호원들과 함께 공식 행사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 지난해 지정 생존자는 소니 퍼듀 농무부 장관이었다.

지정 생존자를 정하는 관행은 냉전시대 핵 공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리더십에 잠시라도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되는 만큼 미 의회가 1947년 ‘대통령직 계승법’을 개정하면서 시작됐다. 다만 1980년 이전까진 지정 생존자가 누구로 정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각료 가운데 누구나 지정 생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미국 출생자여야 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이라 제외됐다. 또 미국 거주 14년 이상에 대통령 출마 기준인 35세 이상의 나이여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시켜야 한다.

지정 생존자는 대체로 권력 승계 서열이 낮고 덜 알려진 각료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현안을 언급할 경우 해당 부문의 각료가 함께 있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지정 생존자를 보면 농무부 장관이나 내무부 장관, 에너지부 장관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