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신년 국정연설에서 한결 유연하고 부드러운 대북 메시지를 내놨다.
지난해 연설에선 목발을 짚은 탈북민을 초청하고 미국인 사망자를 거론하며 북한 체제의 잔혹성을 맹비난했지만 올해는 지난 1년간 북·미 대화에서 거둔 성과와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 정도만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 번째 담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굳이 북한 문제를 길게 다룰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관련 언급은 지난해 국정연설과 비교하면 온도 차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에서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탈북민 지성호씨를 거론하며 북한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대북 제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뜻도 강도높은 톤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 체제의 잔혹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씨 본인과 웜비어의 가족을 국정연설에 초청하고 연설 중 이들을 언급했다. 북한에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 석탄을 훔치려다 기차에 치여 다리를 잃은 지씨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연설 도중 기립해 목발을 치켜들어 박수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씨 사례가 북한 정권의 음흉한 본질을 잘 드러낸다”면서 “북한 독재 체제보다 더 잔인하게 또는 더 총체적으로 자국민을 억압한 정권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 관련 언급은 당시보다 훨씬 간소해졌고 메시지도 부드러웠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알파벳 2700여자 분량의 대북 성토를 쏟아냈지만 올해는 5분의 1 수준인 530여자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돼 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의 석방과 송환 등 대북 외교에서 거둔 성과를 강조했다.
북한을 자극할 만한 노골적인 어휘는 전혀 넣지 않았고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외교적 노력으로 한반도 전쟁 위협을 막아냈다고 자찬하는 부분에 ‘(전쟁이 났다면) 아마 수백만명이 죽었을 것(with potentially millions of people killed)’이라는 문장이 있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읽지 않았다. 자극적인 표현이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도록 건너뛰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차이는 지난 한 해 동안 북·미 관계가 크게 진전됐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국정연설은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으로 북·미가 험악한 기류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과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 등 남북 화해 무드가 물꼬를 트기는 했지만 북·미 관계에까지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반면 올해 국정연설은 1차 북·미 정상회담과 그 후속 협상이 지속되던 가운데 이뤄졌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결정적 돌파구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화의 판 자체는 깨지지 않고 이어졌다. 북한이 북·미 대화 기간 중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업적으로 과시할 만한 성과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확 달라진 트럼프, ‘수백만 명 죽었을 것’ 문장은 읽지 않았다
입력 2019-02-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