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컷] 할머니가 들려주는 나의 살던 고향

입력 2019-02-09 04:00

지난 설 연휴에 고향을 방문해 향수를 달랜 독자라도 저 그림을 보면 다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림 속 마을 곳곳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고 아이들은 팽이를 돌리거나 썰매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림이 담긴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겨울에도 놀거리는 많았다. 오빠들은 나무를 깎아서 새총을 만들고 팽이를 만들고 썰매를 만들고 대나무를 잘게 잘라서 연도 만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솜바지 입고 솜버선 신고 오빠들이 노는 데를 따라다녔다.”

저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추억담을 늘어놓는 주인공은 이재연(71) 할머니다. 경기도 파주에 사는 할머니는 최근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그림책을 출간했다.

어쩌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할머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식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반려식물을 키웠고, 식물을 예쁜 그릇에 담고 싶어서 도예를 배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식물을 담을 도자기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때는 세는나이로 일흔 살이 됐을 때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그림을 보고 행복해진다고 말해주는 게 기쁘다. 하루의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