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웹툰은 살아가는 이야기… 작은 위로라도 얻으시길”

입력 2019-02-09 04:00 수정 2019-02-10 11:26
최유나 변호사가 연재하는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는 100화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혼일기'를 두고 최 변호사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의뢰인들에게 '사실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듣는다는 그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기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부부 간의 규칙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유나 변호사 제공
최유나 변호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웹툰
최종학 선임기자
최유나(34) 변호사는 어린 시절부터 유독 친구의 가정사나 연애상담을 해주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일이 좋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가장 내밀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다. 8년차 이혼전문변호사가 ‘이혼 소송’을 주제로 한 웹툰으로 8만명의 독자를 불러 모은 비결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최 변호사는 “아직 어리둥절하고 현실감이 없다”고 했다. 긴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최 변호사의 외모는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하는 ‘메리지 레드’의 주인공 ‘최변’과 똑 닮아 있었다.

“그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다뤘던 사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언젠가는 이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다 생각했죠. 책을 쓰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인스타툰’(인스타그램 만화)을 선택한 건데, 이렇게 팔로어가 늘어날지 전혀 몰랐어요.”

‘메리지 레드’는 최 변호사가 1000건 가까운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겪은 다양한 사건들과 개인적 소회를 담은 ‘이혼 일기’다. 최 변호사가 글을 쓰고 김현원 웹툰작가가 그림을 담당한다. 지난해 9월 첫화를 올린 뒤 팔로어가 5개월 만에 8만명으로 급증했다.

한 사건이 6개월~1년씩 진행되는 이혼 소송은 변호사 상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연히 변호사는 의뢰인의 어린 시절부터 가정환경까지 상대의 삶을 전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메리지 레드’는 폭행이나 외도처럼 단편적인 사실에 집중하지 않는다.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만 쌓인 사람, 오랜 응어리를 수십년이 지나서야 풀어낸 사람, 가족에게 등 떠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 이혼을 매개로 들여다본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그린다. 최 변호사는 “의뢰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비슷한 사건을 섞어 재구성하긴 하지만 90% 이상 실화”라고 말했다.

이혼전문변호사 자격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해당 변호사의 경력과 연구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허가를 내린다.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이혼을 전담하고 싶었다는 최 변호사는 “답이 딱 정해져 있지 않은 점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혼 소송은 보통의 민사나 형사 사건과 달리 합의 절차가 많이 들어가고, 의뢰인마다 원하는 바가 모두 달라서 개개인을 완전히 이해해야 사건을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가족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거죠. 이혼전문변호사는 ‘홀로 서기’를 도와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단 한사람이에요. 처음엔 직업이니까 강제적으로 의뢰인을 이해하는 훈련을 했는데, 언젠가 정말 그 사람이 이해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오로지 의뢰인 편에 서는 변호사는 때때로 상대 배우자의 적이 된다. 만화 속 최변은 자신이 가게 가압류를 걸고 재산분할을 이끌어냈던 사건의 상대 배우자를 마사지사와 손님의 관계로 다시 만난다. 최 변호사는 이처럼 뜻하지 않게 ‘불편한 관계’가 돼버린 사람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혼전문변호사의 숙명인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이혼은 10만6000건으로 2016년보다 1.2%(1300건) 줄었다. 이혼 건수는 3년 연속 감소하고 있지만 황혼 이혼(결혼 20년 이후)은 큰 폭으로 늘었다.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전체 이혼의 3분의 1(31.2%)을 차지했다. 4년 이하의 신혼부부 이혼(22.4%)보다 많았다.

최 변호사는 이혼 소송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이 단순히 부부를 갈라서게 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계를 개선할 가능성이 있으면 부부 상담도 해주고, 양육 문제로 많이 부딪히면 이혼 전에 아이를 서로에게 보여주는 훈련도 시킨다”며 “사람들이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좀더 잘 살 수 있게, 공존할 수 있게 방향을 찾아주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혼 소송의 경향도 달라지고 있다. 최 변호사는 “외도의 경우 30대는 남녀 성비가 거의 비슷해졌다”며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맞벌이가 늘면서 양육권 다툼에 조부모가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최 변호사는 “아직은 법적으로는 조부모를 보조양육자로 생각하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실제 아이를 키우는 주양육자처럼 돼버리는 사례가 정말 많다”고 했다.

반면 특정 시기에 반복되는 현상도 있다. 바로 명절이다. 명절 전에는 가족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훅 줄어든 이혼 상담이 명절이 지난 후 2~3주간 끊이지 않는다. 최 변호사는 “부모가 아닌 부부가 한 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갈등을 쌓아둔 채 부모와 한 팀을 맺고 배우자를 몰아세우면서 문제가 커진다는 진단이다.

“가정법원 판사들도 ‘부부 싸움은 어떤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소통 방식 때문에 갈라선다’고 이야기해요. 꼭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혼을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미안하다’ ‘고맙다’는 진심을 상처를 주는 말로 표현하면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죠.”

부부 문제를 다루는 최 변호사 역시 집에선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다. 결혼을 하기 전과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남편의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결혼 전 남편의 행동에 ‘이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왜 그런거야’라고 물어본다”면서 “한쪽이 희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한 노력을 두 사람이 어느 정도 공평하게 할 때, 그게 진짜 사랑인 것 같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부부가 헤어짐을 결정하는 것. 최 변호사는 ‘메리지 레드’라는 제목처럼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인생의 실패’가 아닌 ‘결혼생활의 경고등’ 정도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시 파란불이 켜지든, 신호등이 꺼지든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최 변호사는 조언했다.

“이 일을 하며 ‘행복’ ‘불행’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옅어졌어요.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주변인들이 저에게 상담을 할 때면 ‘안 힘든 집이 없구나’ 싶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보는 것 같다’ ‘많이 울면서 봤다’며 공감하는 걸 보며 더욱 확신하기도 했고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위로 받듯이, 독자분들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이게 사는 것이구나’라며 작은 위로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