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 만능주의+바이러스 토착화’ 6년째 구제역 발생 오명 불렀다

입력 2019-02-01 04:03
한국은 ‘6년 연속 구제역 발생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2000년 3월 처음 구제역이 터질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갈지 몰랐다. 올해 들어 경기도 안성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충북 충주로 번졌다. 광역 시·도 경계를 넘으면 그만큼 확산 우려가 커진다.

3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충주 한우농가에서 올해 세 번째 구제역이 발생했다. 농식품부는 긴급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전국적으로 ‘48시간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설 연휴를 앞두고 축산업계 이동을 제한하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껴 놓던 카드였다.

과거엔 해를 넘겨 띄엄띄엄 고개를 들던 구제역이 2014년부터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왜 매년 구제역이 터지는 걸까. 전문가들은 구제역 바이러스의 토착화에 상당한 무게를 둔다. 해외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막아도 아무 소용 없게 되는 것이다. ‘2014~2016년 구제역 백서’에 따르면 2014년만 해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잔존하고 있다가 계속 구제역 감염을 일으킨다고 본다. 지난 28~29일 안성에서 발생한 2건의 구제역을 정밀 검사한 결과 바이러스 유형이 O형으로 밝혀진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2014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의 중심에는 O형이 있다. 2017년(O형과 A형 동시 발생), 지난해(A형만 발생)를 빼곤 O형뿐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같은 O형 구제역이 산발적으로 계속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 잔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농식품부가 구제역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0년에 최악의 구제역을 겪은 이후 구제역에 걸릴 수 있는 소·돼지 등 발굽이 2개인 우제류 가축에 의무적으로 O형 백신을 접종해 왔다. 지난해부터 A형 백신도 추가했다. 그런데도 2014년 7월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으로 ‘구멍’이 뚫리고 있다. 백신만 맞으면 된다는 정부의 ‘백신 만능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나 전문가들은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백신을 맞히지 않은 농가가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전수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백신을 접종했다고 신고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은 탓에 O형이 계속 발생한다는 것이다.

토착화했다면 이에 맞춰진 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역학조사 단계부터 난항을 겪는다. 구제역 역학조사를 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입됐고 진원지가 어디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농가에 CCTV가 없다 보니 드나든 축산차량이 소독과 같은 방역조치를 잘했는지도 살필 수 없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서류상으로 검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구제역 바이러스 잔존을 전제로 깔고 예방적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농가에서 백신을 제대로 접종했는지 평소에 철저히 검사해야 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부 유입이 아닌 내부 발병을 없애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