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35·여)씨는 초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14일 아이를 데리고 대형 복합쇼핑몰로 나들이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미세먼지가 워낙 심해 쇼핑몰도 안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밖에 못 나가니 답답하긴 하지만 공기청정기를 틀고 집 안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5월에 있었던 ‘황금연휴’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졌었다. 당시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9% 줄었다. 통계청은 “미세먼지 증가로 야외활동이 줄어 쇼핑 수요가 감소했다”고 진단했었다.
미세먼지로 나빠지는 건 건강뿐만이 아니다. 미세먼지는 경제도 숨 막히게 한다. 미세먼지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은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다만 학계 등은 미세먼지가 유발하는 국내 경제적 손실이 연간 1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10조원은 문재인정부가 2017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편성했던 추가경정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배정환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에 따른 비용을 11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미세먼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질소산화물(SOx) 등 대기오염 물질이 줄어들 때 생길 수 있는 편익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미세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처가 없다면 경제적 손실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보고서에서 한국이 대기오염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2060년 조기 사망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조기 사망자 수가 359명에서 1109명으로 3배 넘게 급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경제 피해 규모 역시 가장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2060년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손실 비율은 0.6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세먼지는 구체적으로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 걸까. 우선 야외활동 감소가 낳는 소비 위축은 각종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산업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하면 대형소매점 판매액이 2% 포인트 감소한다. 대형마트 등 실내도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아예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받은 실내 미세먼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 및 대형마트 10곳 가운데 3곳의 미세먼지 농도가 국제기준(50㎍/㎥)을 초과했다. 이밖에 관광 및 레저산업이 받는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소비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활동도 피해를 받는다. 구체적인 손실 및 비용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건 아니다. 다만 중앙대 산학협력단은 2009년 황사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조사·연구했었다. 155개 업체를 설문조사한 결과 황사로 가장 많이 피해를 받는 업종은 항공·운송업이었다. 연간 피해액은 2003억원으로 추정됐다. 조선업 등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이 연간 약 610억원, 유리 제조업이 약 248억원의 피해를 보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런 피해가 전체 산업에 적용된다고 보면 황사가 국내 산업에 안기는 경제적 피해는 연간 약 1조2484억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도 황사와 비슷하게 산업에 악영향을 준다고 평가한다. 미세먼지는 항공 관련 산업에선 비행기 결항, 기체 세척비용 증가 등을 유발한다. 농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산화황이나 이산화질소가 많이 묻어있는 미세먼지는 산성비를 통해 토양을 황폐화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비닐하우스에 쌓이면서 햇빛을 막고, 일조량을 감소시키는 것도 문제다. 식물 잎에 들러붙어서 광합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특히 야외에서 일하는 농업인들은 미세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건강 악화, 작업효율 저하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불량률이 증가한다. 공장 자동화 설비가 미세먼지 때문에 고장 나거나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각종 비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조선업처럼 도장작업이 필요한 경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어려워진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악영향만 주지는 않는다. 마스크, 공기청정기 등을 제작하는 업체는 수혜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류건조기나 의류관리기도 미세먼지를 계기로 필수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공기청정기 업체들의 중국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2005년 1조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대기관리 시장이 2020년 3조7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절감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자동차 산업 등은 미래 먹거리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환경컨설팅·연구업체 EBI는 2013년 9240억 달러(약 1048조원)였던 세계 환경시장 규모가 2020년에는 1조1610억 달러(약 1292조원)로 커진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2020년까지 대기오염 개선에 2880억 달러(약 320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6년 기준 7% 수준이다. 독일(29.3%) 영국(24.3%) 등에 비해 낮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미세먼지 위기를 신성장동력 창출의 새 기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재난 수준 미세먼지, 경제도 숨 막히게 만든다
입력 2019-02-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