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별세한 칼럼니스트 김서령(1956~2018)이 음식에 대해 쓴 글을 그러모은 것이다. “시조모와 시조부, 홀로된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 둘, 그들의 음식 수발과 옷 수발과… 운명을 목전에 두고서도 엄마는 공중에 휘날리는 복사꽃 이파리가 좋아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천지가 이토록 고우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이렇게 마음씨 곱고 솜씨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 어머니가 만든 경북 안동 양반가의 고담한 음식을 맛보고, 어머니를 찾는 의좋은 동네 처자들과 할머니들의 풍속 안에서 세상을 익혔다. 여기 실린 37편의 글은 고향의 풍물지이기도 하고 음식 에세이이기도 하고 우리 여인들의 인생론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국수를 밀었다. 혼자서 아버지와 사랑손님 몫의 건진국수, 일꾼들을 위한 물국수, 딸을 위한 깨소금국수 3가지를 만들어냈다. 국수를 잘 삼키는 어린 딸에게 “아이고, 우리 웅후 인제 보니 알양반일세, 자다가 벌떡 일어나 저녁 먹네”라며 호들갑스럽게 칭찬했다. 그는 이 국수의 맛을 ‘이렇게 맑고 슴슴하고 수수하고 의젓하고 살뜰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도시로 나가 다른 살림을 차렸다. 아버지가 없는 그의 집은 동네 할머니들이나 처녀들의 단골 마실 장소였다. 제일 앞에 놓인 글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에 나오는 한 부분을 보자. “누가 무슨 일에 울고 짜고 요란을 떨면 ‘쯔쯔! 생속이라 그렇지’라고 말했다. 생속이란 아픔에 대한 내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믿었던 것 같다.” 우리네 여인들이 간직했던 삶의 지혜같다.
이 책만으로도 김서령의 삶에 배인 깊은 정(精), ‘서령체’라 할 만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시없을 빼어난 글들이다.
김서령은 ‘여자전’과 ‘김서령의 家’ 등을 통해 우리 정서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낸 칼럼니스트로 평가받았다. “그 시절의 덤덤하고 구수한 사람들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아마 독자가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같을 것이다.
강주화 기자
운명 목전에 두고도 삶과 복사꽃에 감사했던 엄마
입력 2019-02-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