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 예타 면제… ‘독이 든 성배’ 꺼내 든 정부

입력 2019-01-30 04:02

대규모로 나랏돈을 투입하는 사업에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라는 ‘여과장치’가 있다. 하지만 정권마다 예타 면제를 만지작거린다. 대규모 국책사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정치적 이익’도 챙길 수 있다. 다만 사업성을 따지지 않다보니 혈세 낭비라는 부작용과 맞닥뜨린다. 그래서 예타 면제는 ‘독이 든 성배’다.

정부가 24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카드’를 꺼내들었다. 토목사업을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을 지양한다는 정권 초기와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23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의 예타를 면제키로 결정했다. 17개 광역 시·도에서 요청한 32개 사업(68조7000억원) 가운데 23개만 골랐다. 예타는 300억원 이상(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살펴보는 제도다.

정부는 예타 면제의 근거로 ‘지역 불균형’을 든다. 2017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4.0%로 비수도권(2.4%)의 두 배에 육박한다. 수도권은 인구, 기업은 물론 생산·물류·교통시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러나 2%대 저성장, 일자리 실종, 제조업 위기라는 ‘사면초가’를 벗어날 수단으로 예타 면제를 선택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정부는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등을 답습하지 않겠다며 SOC 예산을 줄여 왔다. 2017년 22조1000억원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 19조원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다. 예산 감축은 성장률 하락의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투자는 올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전망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SOC 예산 감소가 성장률을 최대 0.2% 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3% 성장을 자신했던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6~2.7%다.

예산 낭비 우려도 크다. 이번에 선정된 23개 사업 가운데 7개는 이미 예타를 받은 적이 있다.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 울산 외곽순환도로, 서남해관광도로 등이다. 과거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사업 타당성, 경제성 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SOC 사업을 배분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이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라며 “당장 올해와 내년 착공이 어렵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한 SOC 추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