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남녀동수면 善인가

입력 2019-02-02 04:00

허균의 누나 난설헌(蘭雪軒)은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 여류시인이었다. 또한 삼종지도의 삶을 강요당했던 당시 남성중심사회에서 시대에 저항한 선구자였다. 이름 대신 ‘경주 이씨’, ‘안동 김씨’ 등으로 여성이 불리던 시대, 난설헌은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썼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15세에 출가한 결혼생활은 원만치 못했고,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었다. 시는 불행한 삶을 달래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시집 ‘난설헌집’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돼 격찬을 받았을 만큼 그의 문체는 빼어났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버거워했고, 가정을 등한시했다. 비극적 삶 속에서 난설헌은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채 기재를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요절했다. 소설 ‘난설헌’의 작가 최문희는 그에게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난설헌이 지금을 산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 게다. 삼종지도는 오래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여성대통령 시대도 열었다. 그럼에도 남성중심사회는 여전하다. 여성계에서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유무형의 차별이 존재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된 것만은 분명하다. 더딜지는 몰라도 방향성은 정해졌다.

이는 객관적 지표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성불평등지수(GII)는 2017년 0.063으로, 조사대상국 189개국 가운데 10위였다. 155개국 중 23위를 기록했던 2014년(0.125)에 비해 13단계 상승했다. GII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2010년부터 각국의 성불평등성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한 지수다. 생식건강, 여성권한, 노동참여 3개 부문에서 모성사망비, 청소년 출산율, 여성의원 비율, 중등 이상 교육받은 인구, 경제활동 참가율 5개 지표를 통해 측정한다. GII 지수값은 0~1의 범주를 갖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을 나타낸다.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가 줄줄이 사라지고 있다. 단체가 생기면 바늘에 실 가듯 여성만의 별도 기구를 만드는 사회현상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언론계만 해도 한국기자협회가 있는데 한국여기자협회가 따로 있다. 사회적 약자이고, 상대적 소수인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해 그런 것이리라.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은 적어도 대학에서는 여성이 더 이상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74.6%·2016년)이 남성(67.7%)보다 높을 정도로 이제 대학에서 여성이 소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교관 후보자 선발 시험을 비롯한 특정 분야의 경우 합격률이 남성을 압도하는 등 여성이 점진적이나마 신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선거에서 여성을 50% 이상 공천하도록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남녀동수법’으로 명명된 개정안은 모든 선출직 선거에서 여성 50% 이상 추천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여성추천보조금 배분에 불이익을 주는 내용이다. 취지는 이해하나 굳이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역차별 가능성이 있어서다. 능력과 자질이 문제이지 성은 문제가 안 된다. 적재적소 원칙에 부합하면 여성을 100% 공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깜냥이 안 되는데도 할당량에 얽매여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천하는 것이라면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이 또래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은 이런 역차별 논란과 무관치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도 안 되지만 특혜를 줘서도 안 된다. 법 앞에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