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교육의 핵심 ‘하브루타’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면 우리 민족은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 등 6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노벨평화상 외에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가 늘 위축되는 이유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만 해도 잦은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열도가 뒤흔들릴 정도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또다시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조감이 든다. 전혀 기대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 세계에서 노벨상 하면 떠오르는 민족이 있다. 유대인이 그 주인공이다. 유대인들의 수는 적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2% 남짓한 유대인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류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재학생 중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그런 유대인이 노벨상의 30%를 석권하고 있다.
유대인이 이처럼 빛나는 성과를 이루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봐야 한다. 교육학자들은 유대민족만의 독특한 교육법이 그들을 최고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법이 여타 민족의 교육법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은 ‘하브루타’에 있다.
하브루타는 서로 짝을 지어 토론하며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일종의 공부법인 셈이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나 친구들끼리 공부할 때, 짝을 지어 하브루타를 한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삶과도 같다.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고 이를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함으로써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하브루타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함으로써 소통과 토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처지에 서보기도 하고 배우는 처지에 서기도 하면서 학습능력을 키운다. 히브리어로 ‘배우다’와 ‘가르치다’를 뜻하는 동사는 같은 어근을 갖고 있다. 유대인들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본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친다. 이 원리에 충실한 교육방법이 바로 하브루타다.
하브루타를 하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해야 하고 상대방의 반박에 맞서 자기 뜻도 변호해야 한다. 질문과 토론이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상대방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질문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토론한다. 어설픈 논리로 맞설 수는 없다. 그건 우기는 것이다. 바로 반박을 당하기 때문에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논리에 맞게 논증을 전개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하브루타는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직원이 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 논리적인 대화는 결국 대안으로 이어진다. 하브루타의 가장 큰 힘은 답을 함께 찾아간다는 데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많게는 300개가 넘는 질문을 했다는 연구가 있다. 누가복음 2장 46~47절엔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고 했다.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라는 대목이 하브루타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에겐 익숙한 대화법이다.
하브루타는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뇌를 움직인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공방은 논리적인 충돌이자 대화다. 하브루타의 대화법이 이와 유사하다. 정확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 없는 질문은 트집 잡기에 그치기 쉽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유대인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섣부르게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가도록 기다린다.
표현력과 발표력이 향상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졌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경청하는 능력은 관계를 풍성하게 한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성경적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자녀를 교육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잠언 22장 6절 말씀은 가정에서 시작하는 쉐마교육의 출발점이자 하브루타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침대 머리 교육이며 생활교육이기도 하다. 스스로 깨닫고 설득하면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서 주입식 교육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창의성은 선천적으로 받는 게 아니다.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부모가 묻는 말은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느냐’는 것이다. ‘뭘 배웠냐’거나 ‘어떤 과목이 재미있었는지’ 묻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수학이나 영어를 잘하는지 매 학기 확인하고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떤 질문을 했는지 관심을 둔다. 질문이야말로 배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아이들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긴다. 어른과 함께 토론하는 상대인 것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권위 내려놓고 아이와 짝지어 토론… 듣고 묻고 답하며 지혜 쌓아
입력 2019-01-31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