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청년층을 향해 “취직이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진출하라”고 말했다. 50, 60대에게는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고 했다.
기업인 대상 강연에서 아세안 국가의 친한(親韓) 기류를 강조하며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팍팍한 민생 현실을 모르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식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이 청년실업자와 은퇴 세대의 아픈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비하했다는 것이다. 김 보좌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보좌관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조찬 간담회에 강연자로 참석해 아세안 국가의 한류 열풍을 언급하며 “여기 앉아서 헬조선이라 하지 마라. (아세안에서) 여기를 보면 해피조선이다”라고 했다. 이어 “국문과 졸업하면 취직 못한다. 그런 학생을 많이 뽑아 태국, 인도네시아의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도 언급했다. 김 보좌관은 “박 감독도 처음에는 구조조정됐다. 쫓겨났다”며 “베트남에서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 해서 인생 이모작을 했다. 대박을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기 퇴직한 50, 60대도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장능인 대변인은 “한국에는 희망이 없으니 동남아로 탈출하라는 것이냐”며 “문재인정부는 국민이 외국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도 “너무나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논란이 일자 김 보좌관은 “신남방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표현으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제 발언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신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5060세대인 박 감독처럼 신남방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한 말이며 5060세대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우리 젊은이들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자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김 보좌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제보좌관이 아닌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으로 참석한 자리였다”며 “간담회 전체 내용을 보면 오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보좌관의 발언이 2015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동 발언’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해외에서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김현철 ‘마리 앙투아네트 식 발언’에 사퇴 목소리 시끌
입력 2019-01-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