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자·세계 CEO·해외 IB, 그들이 보는 경제가 추워졌다

입력 2019-01-29 04:00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 예상에도 불구하고 경제주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금융자산이 10억원을 넘는 부자의 절반 이상은 향후 5년간 부동산을 포함한 한국 실물경기가 침체된다고 예측했다.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조금씩 내려 잡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8일 ‘코리안 웰스 리포트’를 내고 “지난해 조사에서 보였던 낙관적 전망이 비관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KEB하나은행 고객 922명을 설문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이다. 지난해에는 경기 회복(33%)을 응답한 고객이 경기 침체(27%)를 지목한 고객을 압도했다. 반면 올해에는 경기 침체(56%) 대답이 경기 회복(10%)을 넘어섰다. ‘빠른 침체’를 예상한 답변은 1년 새 6%에서 24%로 급증했다.

실물경기 둔화, 고강도 부동산대책 등에 따라 부동산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정적으로 변해 갔다. 서울 부동산의 침체를 예상한 비중은 29%로 회복 예상(25%)과 비슷했지만, 지방은 침체(82%)로 기울어졌다. 지방 부동산 회복을 예상한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

금융시장이 유망한 대체 투자처도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 중국 경기 위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 불확실성에 시달린 지난해에 금융자산 부자들도 평균 수익률이 1.86%에 머물렀다. 2017년보다 4.75% 포인트나 하락한 실적인데도 절반가량의 부자들은 “현재 자산 구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안성학 연구위원은 “대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산 변경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체감경기 위축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신중해지는 태도는 은행 고객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도 마찬가지다. 세계 1378명의 CEO를 대상으로 이뤄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설문조사도 올해엔 ‘색깔’이 바뀌었다. 지난해 설문조사 당시 세계 경제 하락세를 예상한 CEO는 5%에 머물렀지만, 올해 29%까지 증가했다. 성장세를 예상한 비중은 57%에서 42%로 줄었다. 여전히 후퇴보다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PwC는 “낙관론의 하락세가 비관론의 증가세와 비슷해진다”고 진단했다. PwC는 “경제 성장에 대한 신중한 전망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CEO들이 입을 모으는 리스크 요인은 무역전쟁과 경기 둔화를 앓는 중국이었다. 중국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을 보는 해외 IB들의 눈길도 차츰 어두워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노무라 등은 “정부 지출 확대로 한국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1.0%)이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향후 성장세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수출 감소 폭을 상쇄해준 동력이 민간이 아닌 정부로부터 왔으며, 정부소비는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IB들이 말하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는 ‘반도체 사이클 둔화’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투자 위축’ ‘중국 등의 대외수요 약화’로 요약된다. 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모두의 과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경제성장률(2.7%)은 정부의 재정 투입이 만들어준 것”이라며 “고용지표 대부분도 정부 지출로 감당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