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국세청 예규 제각각… 기업 세금 수백억 오락가락

입력 2019-01-28 04:00
세법은 매년 개정되는 데다 내용이 복잡하다. 법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수백억~수천억원의 세금이 오고간다. 납세자, 특히 기업 사이에서 “세법 개정보다 더 무서운 게, 세법 해석(예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굵직한 대기업 과세를 두고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서로 다른 예규를 내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부터 납세자가 국세청의 세금 부과에 대해 기재부 예규를 요청할 수 있게 되면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예규 로비 의혹’ 조사 배경에는 기재부와 국세청 간 대립이 존재한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예규 전쟁’의 대표적 사례가 신세계 사건이다. 신세계는 2008년 월마트를 인수·합병한 후 2011년 신세계와 이마트로 분할했다. 신세계는 합병 때 인수한 월마트 자산(건물, 토지 등)에 대해서는 처분 시까지 과세이연(세금 납부 연기)을 받았다. 하지만 분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세청은 ‘이마트 분할은 월마트 자산이 처분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수백억원대 세금을 부과했다.

반면 기재부는 다르게 해석했다. 신세계는 과세에 불복해 2016년 5월 기재부에 예규를 요청했다. 기재부는 ‘이마트 분할은 월마트 인수처럼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라 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과세이연을 계속해야 한다는 정반대 해석을 내렸다. 결국 이 사건은 조세심판원을 거쳐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예규 충돌은 두 기관의 서로를 향한 불신을 깊게 만들고 있다. 기재부는 법을 만든 곳에서 직접 내린 유권해석이 더 정확함에도 국세청이 반영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국세청은 기재부의 예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두 기관의 예규 대립사례는 또 있다. 신라젠은 2014년 무보증 사모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고, 대표이사 등이 이를 인수해 2015년 주식으로 전환했다. 국세청은 신라젠과 대표이사 간 특수관계인 거래이기 때문에 증여세 부과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기재부는 예규를 통해 신라젠 주주들과 대표이사 간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관계인 거래가 아니라고 봤다. 신라젠은 조세심판원에 조세불복청구를 했지만 기각돼 세금을 받아들여야 했다.

현대차가 2014년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도 과세당국 간 예규 갈등이 있었다. 거액의 세금을 부과 받은 현대차는 토지와 함께 매입한 건축물을 철거할 때 받을 수 있는 수백억원대 세금 공제에 대해 예규를 요청했다. 기재부는 2017년 6월 법인세에 대해서는 “사실판단 사안”이라는 의견을 냈다가 한 달 뒤 부가가치세에 대해선 공제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했다. 기재부는 다른 세목에 대해 각각 예규를 회신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세청은 기재부의 예규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을 했다.

기재부는 삼성과 LG가 미국에서 담합의혹 소송을 벌이면서 지불한 민사 배상금에 대해 2016년 2월, 6월에 손금처리가 가능하다는 예규를 냈다. 이때 처음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제재’가 없으면 미국에서 쓴 민사 배상금의 비용처리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가 이후 단서조항을 삭제하기도 했다.

예규 갈등이나 충돌은 결국 조세불복청구와 소송을 낳는다. 국가가 조세행정소송에서 패소해 이자까지 쳐서 납세자에게 돌려준 돈은 1조960억원(2017년 기준)에 이른다.

세종=전슬기 이성규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