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의 우리 함정에 대한 위협비행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양국 군사 협력이 사실상 중단된 채 서로 말폭탄을 주고받는 냉각기가 수개월 이상 지속될 전망이다. 우방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일본에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국내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조치에다 군사적 갈등까지 겹친 한·일 관계를 풀려면 결국 양국 정상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 오는 4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확대 국방장관회의를 계기로 예정된 국제해양안보훈련에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함을 한국에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취소하는 검토에 들어갔다고 산케이신문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이 훈련은 부산에서 싱가포르까지 이동하며 해적 퇴치, 수색, 구조 작전을 숙달하는 것이다.
해군은 김명수 1함대사령관의 다음 달 일본 해상자위대 방문 계획을 보류한다고 일본에 최근 통보했다. 양쪽이 매년 상대국을 번갈아 방문해왔는데 이번에는 한국이 방일할 차례였다. 지난달 20일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 대상이던 광개토대왕함을 운용하는 1함대사령관의 방일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군 소식통은 27일 “일본의 억지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 한동안 양국 군사 관계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발 빠른 여론전을 펴고 있다. 당초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를 비공개 방문한다는 계획을 지난 24일 세웠다. 그런데 25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광개토대왕함으로부터 추적레이더(STIR)를 맞았다는 P-1 초계기를 운용하는 가나가와현 해상자위대 아쓰기기지를 찾아가 선제공격을 날렸다. 이와야 방위상은 대원들에게 “한국의 레이더 조사(照射)는 극히 위험한 행위”라며 “광대한 해역에 대한 경계·감시에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정 장관의 해작사 방문을 공개했다. 정 장관은 26일 해작사 지휘통제실에서 일본 초계기 위협비행을 ‘심대한 도발행위’라고 규정한 뒤 군의 대응수칙대로 적법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정 장관은 “일본의 위협비행은 세계 어느 나라도 용납할 수 없는 매우 위협적인 행위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지도 않은 레이더 조사를 주장하는 것은 우방국에 대한 비상식적인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정 장관은 초계기 조종사들이 입는 항공점퍼 차림으로 해작사를 방문했다. 이와야 방위상도 전날 비슷한 옷을 입었었다.
군 당국은 위협비행에 대비한 매뉴얼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지난 26일 ‘지휘서신 1호’를 통해 일본 초계기 위협비행에 대비해 접근을 인지하고 대응조치를 하기까지의 작전대응 시간을 단축할 것을 지시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살얼음판 韓·日… 결국 정상이 나서야
입력 2019-01-2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