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생필품 드리는 게 아니라 情을 나눠요”

입력 2019-01-27 19:22 수정 2019-01-27 19:56
아름다운가게가 해마다 개최하는 ‘아름다운나눔보따리’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27일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기 전 서울 종로구 경기상고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배우 박규리씨가 27일 비영리공익재단 아름다운가게의 제16회 '아름다운나눔보따리' 행사의 배달천사(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나정연(가명·80) 할머니에게 샴푸, 치약, 고추장 등이 담긴 나눔보따리를 전달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제공.
나정연(가명·80) 할머니는 서울 서초구의 한 무허가 판자촌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그 뒤로는 산이 있다. 앞으로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와 대학 건물이 판자촌을 가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할머니는 27일 이곳에서 샴푸와 참치통조림 등 생필품이 담긴 상자와 이불 한 채를 받았다. 비영리공익재단 아름다운가게가 홀로 설날을 보내야 하는 소외이웃에게 나누는 ‘아름다운나눔보따리’다. 자원봉사자인 걸그룹 카라 출신의 배우 박규리씨가 전달했다.

나 할머니는 “생전 이런 데 와보지 못했을 텐데 미안하다”고 했다. 나 할머니의 방은 10~13㎡(3~4평). 곳곳은 ‘기워져’ 있었다. 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뽁뽁이’라 불리는 단열 에어캡 여러 장이 누런색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유리 대신 두꺼운 종이가 발린 미닫이문은 그마저도 오른쪽 위편에 구멍이 나 비닐로 막아뒀다. 할머니는 화장실이 없어 근처 지하철역까지 나간다고 했다.

숨이 다 죽은 빛바랜 회색 점퍼, 보라색 털모자, 두꺼운 양말. 나 할머니는 집에서도 중무장이었다. 그는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고, “겨울에는 잘 때 마스크를 낀다”고, “전기요금 때문에 난방은 안 한다”고 했다.

나 할머니는 매월 기초생활수급비 25만원을 받는다. 비정기적으로 복지회관 등에 나가 청소를 할 때면 월 28만원 정도를 더 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저 살기 바빠서 얼굴을 잘 못 본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다가오는 설날에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날 나 할머니와 같은 독거노인, 조손가정 등 1000여 가구가 아름다운나눔보따리를 받았다. 권달우(36) 김설민씨 부부는 딸 나온(7)양과 3년째 봉사활동을 했다. 권씨는 “딸이 첫 기억을 너무 좋아해서 매년 오고 있다”며 “설날만 앞두면 ‘할머니집 안 가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나온양은 “할머니가 예쁘다고 요구르트 줬어”라고 거들었다. 박종훈(47) 장현영(49)씨 부부는 쌍둥이 아들 준하·준서(16)군과 4년째 참여했다. 장씨는 “날씨가 엄청 추운 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참 전부터 밖에 나와 기다리고 계시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박씨는 “단순히 생필품을 드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전달해드리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