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2명 놓고…미·러 안보리서 ‘베네수엘라 대리전’

입력 2019-01-27 19:18 수정 2019-01-27 22:22
호르헤 아레아사(왼쪽) 베네수엘라 외교장관이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지면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 신화뉴시스

미국과 러시아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둘러싼 베네수엘라 사태를 놓고 결국 정면충돌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6일(현지시간)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자 러시아와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국제사회의 진영 대리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안보리 회의에서 “과이도 임시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민주정부를 인정하고 이 악몽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든 국가가 한쪽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며 “자유의 편에 서지 않으면 마두로 정권과 함께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두로 대통령을 겨냥해 “베네수엘라를 불법적인 마피아 국가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EU도 마두로 대통령 퇴진 압박에 힘을 실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며칠 내에 재선거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등 EU 주요국도 공동성명을 내고 “8일 내에 베네수엘라의 재선거 계획이 발표되지 않으면 과이도 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교장관은 이러한 요구에 “어린아이들처럼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EU의 처사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를 기획하려 한다”며 “워싱턴은 아직도 남미 국가들을 뒷마당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마자오쉬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우리는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며 “이번 사태는 베네수엘라만의 문제이지 안보리 소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이 베네수엘라 사태를 놓고 격돌하는 이유는 양쪽 진영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좌파 성향의 우고 차베스 정권 때부터 베네수엘라와 관계가 악화됐다. 두 나라는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08년 쿠데타 시도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한 것을 계기로 10년간 서로 대사도 파견하지 않았다. 미국으로선 친미 성향에다가 미국통인 과이도 의장이 정권을 뒤집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러시아는 차베스 정권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와 외교·경제·국방 분야에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수도 카라카스 인근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전략폭격기 2대를 배치했다. 중국도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권을 적극 지지해 왔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베네수엘라에 500억 달러(약 56조원)가 넘는 차관을 빌려줬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의회만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관으로 인정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내용의 안보리 성명 채택을 추진 중이다. 안보리 차원에서 베네수엘라 의회의 수장인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 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