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와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에 큰 만족을 표하며 2차 정상회담 실무준비를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북·미가 다음 달 말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을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놓고 큰 틀의 교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3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집무실에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방미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김 부위원장이 전달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손에 들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믿고 인내심과 선의의 감정을 갖고 기다릴 것”이라며 “북·미 두 나라가 도달할 목표를 향해 함께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한 결단력과 의지를 피력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2차 정상회담과 관련한 실무적 준비를 잘 해나가기 위한 과업과 방향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또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때 보인 반응은 ‘사의를 표한다’는 수준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나온 메시지는 한층 긍정적이고 구체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친서에 대한 반응을 사진까지 곁들여 즉각 내놓은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 간 논의 중인 상응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력을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띈다”며 “북한이 요구해온 제재 완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 부분 화답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차 정상회담에선 제재 해제 시점이 설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전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해제 시기를 잡고,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한 다음 미국의 독자 제재를 푸는 수순이 거론된다. 그 과정에서 오는 3~4월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북 합의 이행에 속도가 붙으면서 결과적으로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지금까지 북·미 협상 과정을 보면 양 정상이 ‘톱다운’ 방식으로 의지를 확인해도 고위급·실무회담으로 내려가면 교착되는 일이 많았다. 비핵화 디테일을 다룰수록 접점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전례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인내심 발언을 북한이 미국에 다시 공을 넘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미 협상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에 상응조치를 명시하는 데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안다”며 “김 위원장은 ‘말로만 상응조치를 약속하지 말고 정상회담 합의문에 명문화하자’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대신 김혁철 전 주스페인 대사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김 전 대사는 과거 주제네바 북한대표부에서 군축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미국과 군축 협상을 벌이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부는 김 전 대사의 등장으로 최 부상이 협상에서 아예 배제되는 건 아니라고 보고 향후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중국 반출을 미국에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권지혜 최승욱 기자 jhk@kmib.co.kr
친서 받은 김정은, 즉각 호의적 반응… 北·美 ‘큰 틀 교감’ 이룬 듯
입력 2019-01-25 04:00